여주영(논설위원)
이민 온 한인들 가운데는 한국 정치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이들이 적지 않다. 모두들 한국에 있으면 나라도 바꿔놓을 만큼 고국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보통이 아니다. 어쨌든 고국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건 좋은 증거이다. 그러나 이 땅에 이민 온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여기서 잘 살아가야 하는가가 더 주된 관심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생활과 관계되는 모든 분야 중에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크게 논란거리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현실은 오로지 미국에 이민 온 우리들과 관계된 것에 대해 특별히 눈여겨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정치 상황은 솔직히 말해 실제로 우리에게 당면한 이민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우리와 직결된 것은 이 땅에 우리가 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관건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이 땅에 살면서도 그렇게 한국정치에 관심이 많은 건가. 한국의 정치는 여기서 우리가 안 떠들어도 본국에 잘난 수많은 정치인과 백성들이 다 나서서 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여기서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떠들어도 그 곳의 정치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한국은 5000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굴러온 나라이고 또 앞으로도 그 명맥을 계속 그렇게 이어갈 것이다.정치란 임금이나 대통령이 아무리 잘났다 떠들어도 나라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잘났든 못났든 백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어느 정도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떠든다 해서 그 곳의 정치가 바꾸어지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단지 해외동포로서 갖는 바램일 뿐이다. 그런 열정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도 좀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제의해 보고 싶다.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여기서 무엇을 찾아야 하고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는 장님이고 떠나온 고국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의견이 많다면 좀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의 정치는 우리가 아무리 여기서 떠들어봐야 소용도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럴 정도의 힘이나 열정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자신을 세워나가고 우리를 키워나가고, 내가 속한 커뮤니티를 발전시켜나가는 일에 소모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땅에 세워나가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본격적인 이민사는 겨우 30년으로 인간의 나이로 친다면 불과 세 살밖에 안 되는 걸음마 나이이다. 그런데도 현지에서 할 것은 제쳐놓고 만리 밖 한국의 정치만 가지고 지나치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민은 역시 정치를 좋아하고 비판을 좋아하는 민족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좀 지나친 것만은 사실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상당수가 우리와 직결된 이곳의 정치 캠페인이나 토론회 같은 곳에는 한번도 참석치 아니하고 한국에 대해서만 유난스레 목청을 돋우고 열을 올린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렇게 떠들어도 막상 이 곳에 한국의 정치인들이 오게 되면 당당하게 나가 “한국의 정치 이래서 되겠습니까, 잘 좀 하세요”라고 두 눈 부릅뜨고 말한 마디 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오히려 굽신 굽신하면서 옆에 앉아 밥이나 먹고, 증명 사진 찍고, 집에다 그걸 갖다 걸어놓고 마치 그들과 무슨 대단한 사이나 되는 것처럼 쇼 업이나 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는 공화, 민주 같은 거대한 정당이나 정치단체들이 많이 있다. 이 기회에 한국에 보이는 그 많은 관심과 열성으로 우리가 속해 있는 미국 정치나 사회 돌아가는 것에 더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모든 것은 다 인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 땅에 내가 왜 왔으며,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그것도 잊어버리고 이역만리 머나먼 고국의 정치에 대해 비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의 정치가 솔직히 우리의 이민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오히려 이곳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이슈들이 우리에게는 더 절대명제이다. 가뜩이나 식상한 한국의 정치, 이제 얘기만 들어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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