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은행인)
금년 8.15 대축전은 북측 대표단의 파격적인 행보로 통일 성업에 한 발 다가서는, 기대와 족적을 남겨 모두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민족적 대향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일을 가늠할 때이다. 너무 요란하면 귀신도 저어한다.
얼마 전 필자는 이 난을 통해 북핵이 폐기되면 얼굴에 가래침을 뱉으라고 했다. 핵이 폐기되고 통일이 완성(?)되면 가래침은 커녕 X물을 퍼부어도 할 말은 없지만 갈릴레오의 움직이는 지구와 같이 김정일의 적화 야욕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 필자의 소신에도 변함은 없다. 그네
들이 느닷없이 국립묘지에서 묵념하고 DJ 병문안을 간다해서 퍼가는 것 빼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솔직히 말해 깜짝 쇼로 순진한 백성들 헷갈리게 하고 평양을 향한 해바라기들을 희희낙락게 하는 김정일의 원격조종술은 손오병법을 원용(援用)하는 ‘마키아벨리’ 보다도 한 수 위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상종 못할 도적이라 해도 죄없는 사람을 죽이거나 피눈물나게는 안 했다.
하지만 같은 평양에서 마약, 생화학무기, 미사일이나 핵폭탄 등 사람 죽이는 물건만 팔아 먹으려는 자는 바로 김정일이다. 그가 뭔가를 잘못 먹지 않았다면 안하던 짓을 할 리가 없는데 아직 잡지도 못한 호랑이 가죽 흥정하듯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 필자는 피빛 공산주의의 몰개체성과 무자비한 속성을 이론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고 몸으로 터득해서 조금은 안다. 그래서 무조건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믿지 못할 뿐이다. 도대체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라는 것 겨자씨 만큼만 알아도 치마 버리고 뺨 맞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몸에 한 가지 혈액형만 흘러야 살 수 있듯 유일사상, 수령과 혁명사상만이 살 길이고 원쑤는 무조건 쳐 죽이고 자기 생명의 모체인 수령, 당, 대중과 생사운명을 같이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소위 주체사상의 요체인 바, 여기에 개인의 인권, 이성적 사유(理性的 思惟), 또는
감상적 낭만 같은 것이 끼어들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노동자, 농민 등 무산대중을 부추겨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사상이 다르면 쳐 죽이고 자본주의 국가는 깨부수어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 목표다.
특유의 독기와 끈질김에 힘입어 속칭 벼랑끝 전술로 간단없이 재미를 보아온 저들이지만 장마다 꼴뚜기도 아닌데다 초강대 미국의 근자의 태도가 예전과 다를 뿐더러 최첨단 스텔스 전폭기가 한국에 배치된 것이 꼭 안방 천정에 구렁이 든 듯 찜찜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벼락칠 것 같은 두려움에 마루 밑으로 기어든 강아지 꼴이 작금의 저들이다.적의 예봉이 강할 때는 피하고 그 반대일 때 뒤통수 치는 것이 모택동의 유격전술이다. 6자회
담이 종주먹을 대고 양키들은 눈을 부라리는데 이승만, 박정희 도당(?)의 묘 앞에서 분향 재배한들 세금 내랄 사람도 없는 판국에 침 바른 눈으로 묵념하는 게 무슨 대수인가. 더구나 저들에게 구세주나 다름없는 김대중, 노무현의 십년 권세도 서산마루에 걸려있는 이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이 “아- 꿈은 사라지고” 될 판이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현충원 들르고 구세주에게 문안드리며 불국사 방문해서 ‘아- 신라의 달밤’ 합창하는데 어느 누가 남북 화합으로 착각 않겠는가.
남남간에 갈등 일으켜 국가정체성 난도질 하고 진보와 보수세력간 코피 터지는 멱살잡이 하면 옆에서 걸리적거리는 미군이 철수해야할 구실로서 충분하지 않겠는가. 손 안대고 코 푸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데 남의 조상 묘 앞에서 침 발라가면서 “꺼이 꺼이” 못할 이유가 없다.
이런 꽃놀이 판에서 해바라기 정치인들은 하늘을 꿰매고 해를 목욕시킨 것 만큼 큰 공(補天浴日之功)이나 세운 듯 기고만장이고 대통령은 과거사만 들춘다.격랑을 헤치며 가야 할 뱃길은 먼데 옛날에 물에 빠뜨린 칼을 찾겠다고 뱃전에 표시로 그어놓은 금(刻舟求劍)만 내려다 보고 있다. 그 중간에 끼어있는 백성들 어찌할꼬. 민족화합, 한반도 평화, 남북통일, 그 누구나 원하는 일이다. 그 통일이 독일식인지 월남식 통일인지 엄벙덤벙하
다 속고 난 뒤에는 혀를 깨물며 통곡해도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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