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일(성은장로교회 장로)
왜 책을 안 읽습니까?
배운 자들이 못 배운 자들에게 이렇게 오만한 질문을 한다면 그 대답은 뻔할 것이다.“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니까”요즘 나의 심정이 이와 같다. 서울 일에 그렇게 미련이 많으면 서울 가서 글을 쓰던가, 서울에
가서 종로 한복판이나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면 얼마나 후련할까.필자는 지난 반년간 남미 청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중에는 16살에서 30살 정도의 나이에 이곳 미국이란 나라에서 거의 중노동에 가까운 막노동을 하면서 그 날 그날 분노와 절망에서 술을 마시면서 울부짖는 아픔으로 같은 동료들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
면 또 어떤 젊은이는 청소년 또는 청년의 나이에 내년에 고등학교를 가야 몇년 후에 고향에 갈 수 있는데 돈만 벌어서 가면 무슨 낯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며 우는 얼굴이다.또 35세에 돈을 벌고자 2,000달러라는 거액의 돈을 걸고 미국에 와서 매일 매일 노동하면서 여행비용(?)을 갚아야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들 10명 중 9명은 모두 죽자사자 열심히 살고 있
다.
이곳에서 5년간 막노동을 하면서 8만달러를 모아서 고향으로 돌아간 ‘이네스’란 사람이 있었다. 일년 내내 똑같은 옷에 똑같은 신발에 똑같은 모자에 똑같은 표정의 사나이. 그가 돈을 쓰는 것은 버려진 깡통을 주워서 바꾼 돈이거나 길에서 아무도 줍지도 않는 1센트나 5센트짜리 동전 또는 25센트짜리를 주워 모은 것인데 이중 25센트 짜리는 그 날의 횡재가 된다. 그 덕에 어쩌다 소다 한개라도 사는 날은 온종일 싱글벙글이다.
그가 어제 떠난다며 나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너무 지저분하고 큰 눈망울을 이리 저리 굴리면서 ‘시뇰’ 하면 좀 떨떠름 했다. 마치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늘 ‘이네스’를 볼 때마다 부끄럽게 하였다.그가 드디어 떠난단다. 그래서 그가 내미는 손 대신에 크게 팔을 벌리고 아프도록 안아주면서 ‘God Bless you and good luck” 할 때 그의 고생이 훈장으로 저며진 주름이 더 시커멓게 파이면서 눈물이 금새 흘러내릴 것처럼 그의 눈망울에 물이 가득 고였다.
‘댕큐 시뇰’ 하면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또 얼마 전 한 흑인여자 노인과 아침인사를 나누는데 그의 얼굴에는 너무나 많은 표정이 겹쳐 있었다. 슬픔, 고단함, 권태로움 등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Good Morning, God bless you’ 하면서 인사를 하였다. 꼭 잡으면서 ‘당신도 하나님과 함께 하세요. 이 인사를 들어본지가 너무 오래 되었군요’ 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이처럼 내 주변에는 딱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남편은 아내를 믿지 못해서 불안해 하고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한푼이라도 더 건져보려고 눈치를 보고, 무식한 것이 무서워서 ‘내가 누구냐? 내가 그래도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대학 나온 사람 앞에서 큰소리 치는 열등의식에 꽉 막힌 아픈 사람.
서울에 황금송아지 백마리 숨겨놓고 왔다고 큰소리 치면서 헛소리로 날밤 새는 사람, 서울에 가면 당장 금뱃지 달고 다닐 것처럼 허풍을 떠는 사람, 내가 과거 서울에서 국장급 대우를 받았고 수백, 수천명을 거느렸다고, 과거에 말뚝 박고 큰소리 치는 이등병(?).왜 이렇게 헛소리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고 있는가 생각하며 고국으로 돌아간 ‘이네스’를 그려본다.
그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고향에 돌아간다고 책을 업고 다니는 살바도르, 쿠바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이 보고싶다고 온종일 사진을 꺼내보는 알렉스.
글자를 몰라서 싸인할 때 OK하는 인디언 싸인만 하는 넥타리, 교활한 눈초리로 항상 경계심을 보이는 후안, 어떻든간에 그들에게는 돌아갈 고국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서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는 꿈은 참으로 아름답고 보람이 있어 보인다.냄새 나고 찌그러진 그들의 얼굴에서 스며나오는 깨끗한 영혼의 냄새는 그래도 배웠다고, 뭐 좀 안다고 큰소리 치고 우쭐대며 헛소리 치는 그런 한심한 사람들 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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