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은 ‘누가 죽었다’더라, ‘누가 암에 걸렸다’더라는 류의 소식을 듣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주가 없는 것 같다. 지난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ABC의 앵커로 오래 일해서, 그는 우리를 모르지만 우리는 그를 친구처럼 친밀하게 느꼈던 피터 제닝스가 지난 7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는 크리스토퍼 리브의 부인 데이나 리브(44)가 폐암에 걸렸다고 공개를 했다. 낙마해 목 이하를 쓰지 못하던 ‘수퍼맨’ 남편 곁을 9년간 한결같이 지켜서 ‘천사 부인’으로 칭찬 받았던 그가 남편 떠난지 1년이 채 못 돼 암 선고를 받 았다.
이들 두 사람은 모두 흡연자여서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 것으로 해명이 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해명 안되는 암 발병, 해명 안되는 건강 악화 케이스들이 너무 많다. 건강 챙기느라 운동 꼬박꼬박 하고, 먹을 것·안 먹을 것 까다롭게 챙기던 사람이 암에 걸리고, 젊은이 못지 않게 체력이 좋던 사람이 하룻밤 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담배는 입에도 안 대던 여성이 폐암으로 사망하는 일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왜 이렇게 병이 많은 걸까.
20세기 한동안 현대 의학이 웬만한 병을 다 정복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폐결핵, 홍역, 소아마비, 천연두… 생명을 앗아가던 무서운 병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당뇨병, 비만, 동맥경화, 고혈압, 암 등 전에는 쉽게 구경도 못하던 병들이 마구 불어났다.
과거의 병들은 병균이 우리 몸에 들어와 생기는 병이라면 지금의 병들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병이라는 점이 다르다. 운동 부족, 흡연 등 생활습관, 그리고 기본적으로 너무 기름지게, 너무 달콤하게, 너무 많이 먹어서 몸에 이상이 생기는 병들이다. 먹어서 죽는 기현상이다.
우리 외할머니의 친정은 안동의 학자 집안이었다. 그래서 집안에 고 가구며 옛 도자기들, 놋쇠 그릇들, 그림들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플래스틱 제품, 호마이카 장롱 같은 게 유행하자 모두 엿 바꾸듯 헐값으로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문명’에 현혹되어 도자기를 플래스틱 바가지로 바꾸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식생활에서도 똑같이 저지르고 있다. 라면, 소시지, 햄, 각종 과자,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가 신선한 천연식품들을 밀어내 버렸다.
가공식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대인의 식생활을 풍자하는 우스갯소리로 ‘주부 경제 기여론’이라는 게 있다. 오늘날 주부들은 두 가지로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데 첫째, 가공식품을 마구 사들여서 식품 산업을 번창시키고, 그 결과 가족들이 병에 걸려서 의료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말이다.
패스트푸드를 계속 먹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는 지난해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수퍼 사이즈 미’가 잘 보여 주었다. 영화를 제작하고 직접 출연한 모건 스탠록은 30일간 하루 세끼 맥도널드 음식만 먹는 실험에 나섰는데 3주가 되자 주치의들이 ‘당장 그만 두라’고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30일 계획을 다 마쳤을 때는 체중이 24파운드 반이 늘고, 콜레스테롤은 위험할 정도로 올라가고, 간 기능이 극도로 나빠졌으며 만성적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모건은 영화 제작을 하며 당시 맥도널드의 CEO 였던 짐 캔털루포와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60세의 캔털루포가 지난해 4월 심장마비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이어 그의 후임으로 44세에 CEO가 되었던 찰리 벨은 직장암으로 지난 1월 사망했다.
품질 관리와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 그들은 아마도 평생 하해와 같은 햄버거를 먹었을 것이다. 지나친 육식도 문제이지만 소를 사육하며 투여하는 인공성장 호르몬, 항생제, 그리고 곡물 사료속 살충제, 제초제가 모두 인체에 쌓인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는 더 이상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생명이 걸린 일이다. 육식을 줄이고 유기농의 신선한 야채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실천의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혀가 몸에 병을 부르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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