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의 전 총수 김우중씨를 공개석상에서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대우가 한국 재벌 중 2, 3위를 다툴 정도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이었으니까 그의 미국 순방에는 적어도 열 명 정도의 대우 사장단이 수행하고 있었다.
워싱턴 지역 경기 동창회가 김씨를 환영하는 조찬 모임을 마련했는데 그의 비중 때문인지 100명 이상이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를 연사로 소개한 사회자의 말처럼 미국 직장의 9시부터 5시(9 to 5)의 일 시간과 정반대로 5시부터 9시(5 am to 9 pm) 까지 뛰던 사람이라 그런지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 등 몹시 지쳐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그 얼마 전 김씨의 장남이 보스턴에서 교통사고로 희생된 비극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더욱 초조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나만을 지칭한 것은 아니고 그는 행사 후 주변에 서있던 몇 동창에게 귀국해서 일할 때가 아니냐고 인사치레의 말을 했다. 그와 담소 중 내 아내가 김 회장에게 “회장님은 다 성공하셨는데 한가지만은 실패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나는 혹시 그 아들의 사고를 이야기할까 싶어 내심 걱정이 되었다.
김씨도 정색을 하며 “무엇을 실패했는데요”라고 질문하는 것을 아내가 “아직도 담배를 못 끊으셨으니까요”라고 답하는 바람에 어색하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김씨는 담배를 끊어서 몇 년 더 살아 무엇이 좋으냐는 식의 비관적인 대답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김우중씨는 한때 한국 젊은이들의 우상 같은 존재였다. 친구 두서너 명과 1960년대 말에 세운 대우를 세계 방방곡곡에 퍼뜨린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넓은 세계를 상대로 불철주야 뛰면서 계열사 수십 개와 해외 현지법인 수백 개를 일궈낸 수퍼맨으로 각인되어 사회의 주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가면 장쩌민 주석과 만날 수 있고, 프랑스에 가도 대통령과 수상을 접견할 수 있던 김 씨는 무려 41조에 달하는 분식회계, 그리고 10조의 부정대출 및 200 억 달러의 해외유출 혐의를 받고 외국으로 떠돌이 신세였다가 얼마 전 귀국했다.
그의 혜성과 같은 ‘성공’ 뒤에는 박정희 정권 때 이래의 정경유착이란 검은 술수가 있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DJ 정권에 잘못 찍혀 당했다는 대우 측의 변명은 구차한 것이다. 물론 대우만의 흠이 아니라 한국 재벌들 거의 다가 부정과 탈법으로 급성장했다는 시각에서 보면 좀 억울하다는 심사가 들기도 하겠다.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이 “김우중씨와 나와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라고 술회한 것은 모든 재벌들에게 적용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대우 경영에 무리가 있었다는 느낌을 경제에는 전혀 문외한인 나조차 가진 적이 있었다. 1980년대 말경 대우는 미국 정부로부터 수출품의 미국시장 덤핑혐의로 제소되었다. 그때 검찰 쪽으로부터 잘못을 자인하고 500만 달러의 벌금을 내도록 제의 받았지만 대우는 그것을 거절하고 비싼 변호사비를 들여가면서 법정투쟁을 한 결과 2,0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던 사건 때문이었다. 또 20만 달러씩이나 지불하면서 헨리 키신저를 대우로 불러 연설하게 한 것도 석연치 않았다.
김우중씨가 병 보석으로 나왔기 전에는 아직도 1.5평의 독방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로 영치되어 있을 것이다. 대우 총수 시절 서울역 부근 힐튼호텔의 23층과 24층을 자신의 전용 거처 및 집무실로 쓰던 일과 비교해보면 천양지차인 셈이다. 그래도 신문에 실린 1.5평의 독방 도면을 보면 침대, 그리고 책상과 걸상이 있고 수세식 변기마저 있다. 30여 년 전의 한국의 감방 상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오적’ 시로 필명을 떨친 김지하 시인의 시 ‘똥 퍼’가 생각난다.
“똥 퍼/ 장씨는 여호와 증인인데/ 똥 퍼/ 장씨는 별 두 개 짜리/ 똥 퍼/ 징집거부로 삼년 징역에 또 징역 삼년/ 똥 퍼/장씨는 편한 자리 간병부를 지레 마다하고 제일 후진 똥 퍼를 자원한 청년/ 똥 퍼/ 내게 파수대 이바구는 파짜도 아예 없고/ ……/ 왈 운동한다는 내가 장씨만 할까/ 똥 퍼/ 장씨 믿음만 할까/ 똥 퍼/ 장씨 항심만 할까…”
모르면 몰라도 김우중씨는 장씨만큼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장씨만큼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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