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세께나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모름지기 반(反)미에 나서야 한다. 상당히 되먹은 지식인이란 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면 미제국주의를 매도하는 글줄이라도 써야 한다.
한국 이야기인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반미주의는 바야흐로 첨단의 유행이고, 또 전 세계적 현상이니까.
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물질주의자들이다. 문화를 증오하는 족속이다. 거기다가 광적일 정도로 종교적이다. 한 마디로 무식하고 촌스럽다. 바보 같다. 추악하기는 또 어떻고….
파리의 카페, 프랑크푸르트의 맥주 집에서 흔히 들리는 이야기라고 한다.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쏟아지는 말들이다.
그러기를 몇년째인가. ‘enough and enough’-. 요즘 관심은 오히려 친(親)미주의자에 쏠리는 것 같다. 뭐랄까. 점차 없어져 가는 것, 희귀종에 대한 관심이라고 해야 할지.
반미가 시대정신이라도 된 것 같은 이 때 친미주의자는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대처 총리를 기억하는 영국의 중소 기업인일 수 있다. 공산주의라면 지긋지긋한 폴란드 지식인일 수도 있다. 인도의 주식거래인, 필리핀의 제조업자일 수도 있다.
‘포린 폴리시’지가 열거한 친미주의자들의 국제적 스테레오 타입이다. 전형적인 반미주의자들, 말하자면 성난 아랍의 근본주의자들, 좌파 신문인, 맥도널드의 상륙에 분개한 프랑스 농부들의 모습과 대조시키고 있다.
이 친미주의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리하기가 어렵다. 서구형 반미주의와 아랍형이 다른 것처럼 친미의 이유 역시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은 찾아낼 수 있다. 그 단초를 제공하는 게 퓨 국제연구소가 발표한 최근의 여론조사 내용이다.
17개국의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밝혀진 사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한때 극도로 팽배했던 반미감정이 상당히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모로코, 레바논, 요르단 등 아랍 회교권 국가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낮아졌을까. 관련해 주목할 포인트가 있다. 이들 국가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소망이 높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반(反) 이슬람적’이란 이유로 극력 기피하는 게 민주주의다. 이 민주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해 자살테러도 불사하고 있는 거다.
민주주의에 그런데 80% 이상의 국민이 굳건한 신뢰를 보였다. 무엇을 말하나. 세계적인 보편가치에 대한 동의가 높을수록 반미의 골은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보다 명확한 민주적인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친미주의자들의 지닌 공통점을 정리해 본 것이다. 지나친 단순화인지 모르겠지만. 또 이런 정의도 가능할 것 같다. ‘세계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반미주의는 이 맥락에서 그러면 어떻게 정의될까.
“수세기 동안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가난한 자, 박해받는 자들을 품어왔다. … 한국인, 쿠바인, 그리고 베트남인. 이 땅에서 부를 일군 이 이민자들은 오늘날 미국의 가치관을 굳건히 신봉하고 있다. 미국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다. 이 미국, 다시 말해 인류의 소우주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증오한다는 건 인간,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의미다.”
종교사학자 폴 존슨이 내린 반미주의에 대한 정의다. 다분히 미국 중심의 시각으로 보인다. 이 정의에 동의하는 사람이 그런데 결코 적지 않다.
바로 퓨 국제연구소 여론조사가 밝힌 사실이다. 친미주의자는 결코 희귀종이 아니고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베트남,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오히려 늘고 있다. 이 여론조사의 또 다른 결론이다.
“반미는 새로울 것도 없다. 새로운 것은 반미정서가 한국사회 전 계층에 스며들었다는 사실이다. 정부 정책결정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지식인에서 중산층, 그리고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반미정서에 물들어 있다.”
아시아 타임스의 보도다. 밖에서 본 한국의 모습이다. 한 마디로 거칠 것 없는 반미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복잡한 설명은 피하자. 판단은 각자의 몫이니까.
한 가지는 그러나 분명한 것 같다. 작용은 반작용을 불러온다고 했나. 반(反)한의 목소리가 미국에서 날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미에서 시작돼 반미로 일관되고 있는 한국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점차 가중되면서 말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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