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인사회의 모 은행장은 남가주의 여러 한인 은행들 중에서 5년 내에 큰 은행 둘만 남을 것이라고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신문기사를 보고 과연 큰 은행만 자유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생각하여 보았다.
한때 한국에서 유행하였던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이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인은행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일까.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논리에 따라 규모가 큰 은행은 단가비용이 적어 단가가 높은 작은 은행을 물리치고 혼자만 성장하고 더 나아가 혼자만 존속할 수 있는 것일까.
마케팅 원론 중 시장에서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 예를 들어 비누, 치약, 소금, 검 등 아주 단순하고 값이 저렴한 상품은 서비스가 포함되지 않은 100% 상품 자체만 사고 파는 것이다.
또 하나의 극단은 의사의 검진, 여행, 금융 등으로 이는 상품이 포함되지 않은 100% 서비스만 사고 파는 것이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이 양극단 사이에 있는데 어떤 것은 상품 쪽이 비중이 더 크고 또 다른 것은 서비스 쪽이 비중이 더 크게 된다.
식당의 경우는 상품과 서비스가 50대 50으로 절반씩 된다고 본다. 은행의 경우는 서비스가 100%이다. 서비스 쪽이 50% 넘는 산업은 그렇지 않은 산업보다 규모의 경제 논리를 훨씬 적게 적용 받는다. 그래서 식당과 은행은, 규모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살아 남을 수 있고 또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고급식당의 음식값이 비싼 이유는 음식자체보다 식당의 위치, 분위기, 종업원의 태도 등 서비스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어떤 소비자는 서비스 질이 떨어져도 음식값이 낮은 식당을 선호할 것이고 어떤 소비자는 음식값이 비싸더라도 서비스 질이 높은 식당을 선호할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만약 식당에 적용된다면 대형식당은 살아 남고 작은 식당은 경쟁에서 도태 되어야한다. 어느 산업이건 규모의 경제 뒤 에는 규모의 비 경제 (Diseconomies of Scale)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생산공장도 어떤 생산량까지는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다가 이 생산량을 지나면 원자재 공급문제, 기술자의 확보문제, 각 분야간의 화합문제, 규모에 합당한 경영능력의 부족 등이 발생하여 도리어 생산원가가 높아지게 된다.
각각 입맛이 다르고 받는 서비스의 선호가 다른 고객들을 상대하는 식당은 그 규모의 비경제 영향이 딴 산업보다 훨씬 빨리 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반식당, 고급식당, 작은 식당, 큰 식당이 다 공존하기 마련이다. 각각 특유의 고객 층(Niche Market)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경우는 어떠한가. 작은 은행이나 큰 은행이나 거의 같은 컴퓨터에 거의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므로 작은 은행도 큰 은행과 같은 고객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은행도 딴 산업과 마찬가지로 절대 필요량(Critical Mass)을 확보하면 생존할 수 있고 각자의 고객 층을 확보 유지하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오늘날의 고객 서비스에서는 하이텍 (High-tech)뿐만 아니라 하이터취 (High-touch)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더 잘하는 은행이 규모에 상관없이 더 이윤을 내는 착실한 은행이 될수 있다. 은행에도 규모의 비경제가 적용됨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큰 은행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작은 은행이 있겠는가. 규모의 비경제성 때문에 큰 은행의 원가가 작은 은행보다 항상 더 낮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고객과의 관계인 하이터치에서는 작은 은행이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가진 은행이 역사가 짧은 은행보다 더 낫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쉬운 예가 1897년(고종 34년)에 설립된 한국최초의 은행인 조흥은행이 1982년에 설립된 신한은행에 2003년 흡수 합병된 것이다.
은행은 규모와 관계없이 모두가 고객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함과 동시에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하여 작게는 동포 경제, 크게는 미국경제 발전에 기여하여야 하리라고 본다.
이청광
칼스테이트 LA 마케팅교수
미래은행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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