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남녀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요즈음 들어 부쩍 남편 친구들의 회동이 잦아지는 것에서 그런 면을 본다. 이곳에서는 물론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이 메일이 빈번하다.
그들의 편지는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연륜이 쌓이고 다져져, 인생의 심오한 맛을 느끼며 인생을 관조하는 나이에 어울리는 좋은 생각, 글을 보내온다. 삶을 잘 살아온 사람에게서 풍겨나는 중후한 멋에, 어린 시절의 순수하던 정이 흐르고,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반추하는 모습이 천진 무구한 어린아이들 같다.
남편은 친구에게서 편지가 오면 가끔씩 모니터 앞으로 나를 이끈다. 그 속내에는 내용을 서로 나누자는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안다. 요즘 들어 부쩍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하기를 원하는 모습을 보며, 젊었던 시절의 ‘독야청청’이 사라지는 것 같아 측은지심이 든다.
어느 날인가 서울에서 남편 앞으로 익스프레스 메일이 배달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찍었던 사진을 수 십년 만에 친구가 확대해서 보내 준 것이다. 그 며칠 후에는 엿을 보내겠다는 메일이 들어왔다.
“옛날 고향에서 먹던 엿을 생각하고 옛 맛을 살리자는 뜻에서 보낸다. 전라도 담양 한과 전문점에서 만든 쌀엿인데 이것을 개발한 분이 우리나라의 무형 문화재이다. 그 분은 우리 고유의 옛 것을 보존하자는 의미에서 꾸준히 전통의 맛을 연구해 왔다. 그 뜻을 높게 평가하여 직장에서도 엿을 구입해 선물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이 엿을 먹으며 고향 생각에 푹 빠져보기 바란다.”
편지를 받은 지 나흘만에 묵직한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 속에는 새끼손가락 만한 크기의 쌀엿이 하나하나 포장되어 가지런히 담겨져 있다. 포장지 위에 일일이 유통기간을 적어 놓은 것에서 상품에 대해 책임지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처리 과정이 세련되고 깔끔하여 눈으로 만 봐도 저절로 손이 갈 정도로 맛깔스러워 보인다. 냉장 보관이라고 했으나 더운 날씨임에도 포장지에 달라붙거나 녹지 않는 것으로 보아 특수 가공 처리했음이 분명하다. 엿의 맛과 향기를 음미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은, 어느덧 고향에서 한 차례 소나기로 시원해 하던 소년의 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각가지 입맛을 돋구는 간식이 많으련만 고향의 맛을 살려 지키려고 노력하고, 연구하며 생산하다가 무형 문화재 경지에까지 도달한 그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가장 옛것과 통하는 법, 보존하고 개발하여 받아들이는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만들었으리라.
엿을 보고 있으니 엿장수의 커다란 가위소리가 들린다. 맛이 최고라는 울릉도 호박엿. 현란한 찹쌀 과자로 장식해 놓은 넓적한 생강엿. 겨울에 엿치기하기 좋던 흰엿이나 깨엿은 부러트려서 엿에 난 구멍 크기로 승부를 정했다. 엿장수들은 많이 주는 양 엿을 늘였다 줄였다 하기에 “엿장수 마음대로” 라는 말이 생겼고 사람을 골릴 때 흔히 “엿 먹어라” 라는 속어도 쓴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엿을 감미료로 사용했다. 엿은 곡류나 감자류에서 추출한 녹말을 엿기름으로 당화시켜 농축, 정제한 감미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 엿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사용했다고 하는데 사용된 원료에 따라 쌀엿, 고구마엿, 옥수수엿, 무엿 등 종류가 다양하다. 또 밥풀이나 땅콩, 깨, 잣, 호두를 버무려 강정을 만들어 두고 명절 때나 겨울 간식으로 사용했다.
고국을 떠나온 지 오래 되었건만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엿을 다시 맛보게 되니 잊고 있었던 정취가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개발 여지에 따라 무궁무진한 우리의 향토 식품들, 옛 맛, 이런 것들을 외지로 보낼 때, 맛뿐만 아니라 거기에 담겨있는 우리 고유의 정서도 함께 포장해서 보냈으면 좋겠다. 잊혀져 가는 아득한 옛날의 기억, 소리,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다시 한 번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게 되고 향수에 젖어들게 한다.
유숙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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