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경(뉴저지 이스트 윈저)
여름방학이 되어 내가 아이들과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공연을 하나 보는 것이었다. 공연이라 하면 먼저 뉴욕을 떠올리게 되고 뉴욕 하면 교통의 혼잡함과 입이 딱 벌어지는 주차요금이 생각나서 ‘배 보다 배꼽이 크다’는 꼴이 될까봐 망설여지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6월 말까지 몇개월 동안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입성 1주년 기념으로 한인들에게 할인요금으로 대우해 준다는 기쁜 소식이 있어서 6월을 넘기면 안될 것 같았다. 이차저차 남편과 일정을 맞추고 친하게 지내는 집과도 시일을 조정하고 있었는데 여의치 않았다가 정말 극적으로 간신히 6월 말 막차를 탄 꼴로 공연장에 간신히 도착했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잠시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문을 열어줄 때까지 밖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극장 안에서는 북소리 꽹과리 소리들이 신명나게 두드려지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5분 남짓한 시간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다.드디어 문을 열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극장의 객석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차 있었다. 한인들이 많은 거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서 객석을 메운 관람객들의 대부분은 외국인
들이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관람객을 직접 무대로 이끌어 참여하도록 하는데 거리낌 없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난타는 5명의 개성있는 캐릭터와 주방이라는 익숙하고 친근한 공간이 등장하여 여기에서 온갖 다양한 리듬과 소리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양한 야채들 즉 오이, 당근, 양배추, 양파 등을 칼로 다지면서 도마를 두드리거나 접시를 날리며 내는 소리들은 우리의 가락
인 ‘전통 사물놀이’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음악처럼 소리를 낼 수 있다. 사람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언어 이외에도
하찮은 쓰레기통이나 냄비뚜껑 부딪히는 소리, 더러운 것을 쓸어 담는 빗자루 소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나 국물이 넘치면서 토하는 소리 등등 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 소리와 리듬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 이 작품은 non verval performance 로서 세계 공통어인 ‘웃음’이라는 소재를 설정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문한 국적에 상관 없이 보고 즐길 수 있다. 미국에 살면서 공연을 보고 이렇게 원 없이 웃어보기도 처음인 것 같았다.내 옆에 앉아서 공연을 보는 새 아이들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기에 바빴고 남편도 연신 푸하하하~ 정말 겁나도록 웃는 것 같았다. 일상에서 잠시 떠나 돈 걱정, 밥 걱정 내려놓고 한 순간
이라도 엔도르핀이 팍팍 돌게 웃어보는 일,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종영 날짜를 정하지 않은 open run 방식으로 진행되는 우리의 ‘난타’가 정말 자랑스럽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아주 많이 했다. 몇년 전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을 때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한국 축구를 응원하던 아이들이 난타를 보고 또다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극장 입구에 출연배우들이 서서 원하는 사람에게 싸인도 해주고 기념촬영도 해주었다. 아이들은 쑥스러워 옆으로 가지 못하는데 나는 오랜만에 내 고국의 신명에 한껏 빠졌기 때문에 겁 없이 배우들 앞으로 가서 악수도 하고 싸인도 직접 받았다. 그리고 어색해 하는 아이들 등을 밀어 사진도 한 장 꽉 박았다.
뜨거운 조명과 기대감으로 가득찬 관객들의 시선 속에 공연 내내 땀을 얼마나 뺐던지 그들의 모습은 젖어 있었지만 그 젖은 옷과 얼굴로 해맑게 웃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저 무대에서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고 무거운 접시를 공중으로 날리기 위해서 저 사람들이 흘렸을 땀과 눈물이 있어서 뉴욕 브로드웨이 한복판에서 우리의 작품이 올려지고 객석이 매진되는 것이리라.돌아오는 길에는 맨하탄에 가면 반드시 가는 설렁탕 집에 가서 온가족이 늦은 밤 성대한 야식을 곁들였다.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의 밤은 불빛이 휘황해서 밤도 밤 같지 않았다.
저물지 않는 뉴욕의 밤, 어디선가 내 어릴 적 고향 마당에서 들었던 장구 소리며 노랫가락 소리들이 들리는 듯 하여 눈을 들어 유리문 밖 풍경을 바라보니 넓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뺑 둘러앉은 사람들과 징을 울리고 북을 치는 농악 패거리들, 그리고 그들이 돌리는 긴 상모가 땅을 박차며 돌아가는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하였다.나는 고향이 그리워 가슴을 열고 우물 속 두레박으로 그 소리들을 길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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