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킹 마지막 날,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부스럭대는 소리에 직원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나온다. 가져간 커피믹스 한잔을 마시고 있으니 네팔리 트레킹 가이드들이 다가와 간밤에 잘 잤냐하며 친절한 웃음을 건넨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를 보고 자기들이 업고 갈 테니 걱정 말라며 격려한다.
어제 저녁은 트레킹 마지막 날이라 트래커들과 가이드들이 한잔 하자며 식당에 모였다. 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오늘 하산할 일이 부담스러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트래커들은 모여서 그들의 인생을 논했을 것이고 가이드들은 카드놀이를 하며 그들만의 지루함을 달랬을 것이다.
오늘은 간드룩에서 비레탄티를 거쳐 트래킹을 시작한 너야풀까지 약 6시간의 산행이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멀어져 가는 히말라야를 올려다보며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아쉽게 내려오자니 무심히 지나쳤던 시냇물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고 거침없이 지나갔던 네팔리들의 모습 하나 하나가 가슴에 내리 박히고 있다.
나보다 늦게 출발했던 다른 팀들이 먼저 내려와 점심을 먹고도 두 시간을 더 기다렸다며 앉은 자리를 내어준다. 저 멀리 꽃무늬 셔츠를 입은 운전사 아저씨가 양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한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어서 걱정했다며 괜찮으냐고 재차 묻는다. 호텔에 도착하여 가이드와 운전사와 아쉬운 작별을 하려니 또 비가 쏟아진다.
오랜만에 호텔에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까지 푹 잤다. 오늘부터는 가이드 없이 혼자서 일정을 보내기로 하고 오후엔 시내와 가까운-줄배를 타고 들어가는-호텔로 옮겨서 네팔의 또 다른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한다. 휴양지인 포카라로 돌아와 삼일을 페와 호수 근처에서 적당히 게을러지며 인도식 발 마시지도 받고 샤핑도 하면서 할 일 없음이 일 인양 지냈다.
점심은 한국 식당을 찾아 오랜만에 시원한 콩국수를 시켰는데 더위로 마음처럼 먹히지가 않는다. 젊은 시절 히말라야에 반해 네팔에 눌러앉아 식당을 하게 되었다는 아주머니와 그녀가 운영하는 호숫가의 정원이 아름다운 또 다른 식당으로 가 시원한 보리차와 레몬차로 목을 축이며 그녀의 그림 같은 인생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포카라에 돌아와 나흘째 되는 날 아침, 현지인들이 타는 시외버스를 타고 치트완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시내를 뺑뺑 돌아 시외로 빠져나가는 길에 널려진 네팔리들의 일상적인 삶을 보니 어디가나 사람 사는 모습은 똑같다. 무쇠 덩어리인 고물버스가 속력도 못 내고 소리만 요란하여 힘겹게 산길을 오르는 걸 보니 이러다가 언제 도착할까 싶다.
6시간만에 ‘따리’란 곳에 도착하니 사파리 차림의 남자가 버스에 올라 호텔에서 나왔다며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한다. 거기서 1시간을 그가 몰고 온 지프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완전 밀림지대다. 기후가 다른 도시와 10도 이상 차이나는 열대지역이어서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 기름진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더위로 온전한 것이 없다. 잎 표면은 병충해로 모양이 뒤틀려 있어 제대로 된 잎사귀가 드물다.
호텔은 더위로 헐떡거리고 정치적 문제와 몬순 기후의 영향으로 여행객이 줄어 손님은 나 혼자 뿐이다. 음식은 이제까지 네팔에서 먹어본 것 중 최고의 맛을 자랑하고 모든 직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여왕처럼 떠받쳐 주는 네팔리들의 황송한 서비스와 몸을 가눌 수 없는 더위에 이중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그들의 때묻지 않은 언어가 잠에서 나를 깨우니 이런 고요함 속에 파묻혀 있는 혼자가 처음으로 불편하게 느껴진다.
모든게 자연 그대로이고 한국보다 40년이 뒤졌다는 네팔, 지금의 정부는 정치적 부패로 정부주도의 일자리는 꿈도 꿀 수 없고 외국 자본이 들어와 봐야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할 리 없으니 일할 수 있는 젊은 노동력이 더위와 부패한 정치 속에 파묻혀 늘어져 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네팔리들을 보며 내가 속한 환경에 적당히 순응하고 타협하면서 그동안 세월을 허비한 것에 대한 고통이 따른다. <5회에 계속>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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