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교-기독교 문명권과 회교 문명권간의 갈등이 세계 전쟁으로 번질 것이라던 하버드 교수 새뮤엘 헌팅턴의 소설 같은 예언의 첫 가제가 9.11 테러를 계기로 현실화했다. 헌팅턴의 ‘문명들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의 다음 가제는 서방과 회교권의 대전쟁이 수습되기 보다는 중국 중심의 유교 문명권(한국과 일본이 가담한)과 서방 및 회교권의 3각 전쟁으로 확대되어 세계 질서 재편성을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헌팅턴의 문명 충돌이란 실제는 종교 문화권간의 충돌, 즉 장구한 세월에 고착된 가치관 및 이에 부착된 감정 체계들 간의 피나는 투쟁이다.
이스라엘의 반세기 넘는 테러 시리즈부터 지난 7월 7일 런던의 연쇄 테러까지 피해측의 선택은 테러 집단에게 더 강한 폭력을 되먹이는 폭력의 패러다임이다. 9.11 테러를 폭력의 패러다임 차원에서 대응한 미국의 정치권은 공포감을 에너지로 하여 민심을 조작하여 공포에 기저한 방위법들과 선제 공격정책을 채택했다.
미국 주도의 회교권과의 전쟁은 아랍권의 민주화를 표방하지만 회교권과의 종교적 성전 양상에 빠지고 자원 착취를 위한 식민주의로의 복고라는 오해를 되살렸다. 그러므로써 아랍 회교 극렬분자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할 명분과 신념을 주었고 이라크 전쟁은 오히려 회교권의 다국적 게릴라들이 증강할 온상을 제공했다.
테러에 의연하게 대응하고 테러 목적의 하나인 공포 반응을 거부하는 영국의 모델은 폭력의 패러다임 중에서 격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런던 테러로써 또 다시 자명해진 것은 정보력 강화나 폭력 보복을 양적으로 증대시킴으로써 테러리스트들을 양적으로 박멸하는 종결 방정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48년 독립 이후 아랍국가들의 전면전쟁 도발과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자살 테러에 대응해 온 이스라엘의 모델도 폭력 패러다임의 대량 보복형이지만 그 역시 끝이 안 보이는 것이다. 작년 3월 마드리드 철도 폭탄 테러 충격으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고 이라크 파견군을 철수함으로써 테러리스트들에게 굴복한 스페인식은 테러리스트들을 격려하는 폭력 패러다임의 최하위 모델이다. “국민정서”가 합리성에 우선하는 한국 풍토에서도 테러 발생시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스페인 모델이다.
런던 지하철 테러가 노린 대로 G8 선진국들이 이런 맥락에서 테러리스트 박멸이라는 기치를 다시 높이 쳐들었으나 테러리스트들의 소재지, 훈련시설, 자금 공급원, 연락망, 실행 경로와 표적 등을 색출 차단하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테러는 근절될수 있을까? 테러리스트 박멸이나 테러 행위 근절은 정보 기술과 살상으로써 달성한다는 수학적 계산이 되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과 대 테러전쟁을 종결시킬 시나리오는 폭력의 피드 백 패러다임에서 출현하지 않는다.
테러 행위 근절은 그 행위자들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 신념 등에서 근원하는 동기 형성을 예방하거나 형성된 동기가 행동화되지 않도록 유도 또는 와해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동기가 없으면 수단이 제공돼도 행위가 발생하기 어렵다. 회교 극렬분자들도 자기 종족 집단의 생존권 보호와 종교적 신념 존중을 가치로 하며 그 수호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영광으로 믿는다. 회교도들의 가치 주장을 서방 동맹군이 경멸하고 그들을 죽이는 것은 회교도들의 종교적 최고 가치 수호와 영광 달성을 촉진한다. 테러를 폭력 모델로만 대응하는 방법은 영광스럽게 천당에 가려는 회교도들의 순교자의 길을 도와준다.
그러나 극렬 회교도들의 가치와 신념 자체를 변형시키는 개종 시도는 모든 종교 신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거부감을 자극하며 단기간에 실현성이 없다. 회교의 신관과 기본 가치관들을 존중하면서 그것이 서구 문명의 가치관, 신관과 대등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정신적인 고원의 평지를 만들음으로써 폭력의 패러다임 보다 더 근원적인 힘들을 종합하는 패러다임 차원에서 모색해야 될 것이다.
폭력은 한 쌍 이상의 힘들이 피차 제압하려는 갈등에서 피차의 힘을 소모하고 한 편이 완패해야 끝난다. 반면에 여러 힘들이 같은 테두리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작용할 때 힘들은 상승하며 우주 근원의 온전한 능력에 조화된다. 유태교-기독교 문명권이 오랫동안 경멸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회교 문명권의 가치와 인권을 존중해 주는 해결은 테러리스트들과의 협상이 아닌 종교 지도자들 간의 대화로 시작될 수 있다.
이윤모
일리노이주 인권국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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