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
“아기 키우랴, 살림하랴, 공부하랴, 너희들 너무 바쁘겠다. 허구 헌 날 끼니때마다 뭘 해먹긴 해야하고, 식단이 짜여져 있으면 그래도 좀 수월하겠지만, 정작 해먹을 식단이 정해져 맛있게 하려고 해도 맛이 제대로 안 나기도 하지. 우리집 남자들 입이 까다롭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다만.
…나는 요리연구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정과를 나오지도 않았지만 30년간 집에서 만들어 먹었던 음식을 내 나름대로 적어두고 정리했던 것을 가장 쉬운 방법과 정확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적어보낸다. 한 움큼 넣어라, 보글보글 끓여라, 살캉하게 삶아라, 삼삼하게 절여라 등등 아리송한 방법이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건데, 그렇게 가르쳐 주려면 바쁜 세상이고 또 늘 함께 음식만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이 네가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해서 적당하고 해먹기 쉽다고 생각되는 것만 골라서 적어보내는 거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게된 너희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해서 틈틈이 적어본 나의 음식 만드는 방법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단, 시어머니가 이렇게 하셨다니까 나도 꼭 그렇게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공연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기 바란다”
이것은 장선용씨가 쓴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의 서두에 있는 글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93년 처음 출판돼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온 이 책은 우리 한국일보 서울본사의 명 칼럼니트스 장명수 이사에 의해 발굴되고 출판되어 유명해진 책인데 그 사연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저자는 장명수님의 이화여고 한 해 선배.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오래 외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그녀는 친구들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해먹이면서 향수를 풀었고 어느덧 친구들의 전속요리사가 되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은근한 걱정은 두 아들을 둔 그녀가 어떤 며느리의 음식 솜씨에 만족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친구네 잔치에 보내려고 밤새워 만두 수백개를 빚고 빈대떡을 지지는 시어머니를 갖게된 그 며느리들을 우리는 동정했다”고 장이사는 회상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 살고 있는 그 ‘불쌍한’ 며느리들을 위해 장선용씨는 해먹이고 싶은 음식이 떠오를 때마다 그 음식 만드는 법을 편지로 적어서 보내곤 했다. 그 요리 편지가 꽤 많이 모이자 한 아들이 컴퓨터로 정리하고 프린트하여 100권의 홈메이드 요리책을 만들었고, 저자가 직접 붓글씨로 ‘매일 해먹는 음식 만들기’란 제목을 일일이 써서 며느리와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다음은 장명수 이사께서 쓰신 글이다.
“어느날 ‘장명수 칼럼’에 쓸 소재가 없어 애태우고 있던 나는 구세주처럼 나타난 언니로부터 그 책을 받았고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이란 제목으로 책 이야기를 칼럼에 썼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신문사 전화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 요리책을 한 권 구해달라는 주부들과 남편들, 딸을 시집 보낸 어머니, 아버지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책을 출판하겠다는 기라성같은 출판사들, 해외 독자들의 전화도 줄을 이었다. 홈메이드 요리책을 한 권씩 받아들고 좋아하던 우리 친구들은 그 뜻밖의 사태에 흥분하여 회의를 거듭했고, 다른 출판사보다는 모교인 이화여대 출판부에 책을 맡기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언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며느리들에게 주었고, 이제 그 책은 ‘우리들의 요리책’이 되었다… 함께 출판하는 영어판은 한국어와 한국음식에 서투른 해외의 2세, 3세 교포들을 위해 만든 것인데,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데도 큰 몫을 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오래 전에 들었으나 실제 구입한 것은 지난 주 한인타운의 서점에서였다. 이 책은 음식사진이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요리책이 아니라, 사진은커녕 그림 한 점 없이 순전히 글만 있는 진짜 요리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자상하고 지혜로운 주방 노하우는 어디서도 얻어들을 수 없는 진짜 한국 전통의 손쉬운 어머니 요리법이라 두고두고 읽어볼 가치가 있다. 특히 조리법을 바로 옆에 있는 며느리에게 가르쳐주듯, 혹은 편지로 자세히 기술하듯 구어체로 다정다감하게 적어 내려가서 한결 이해가 쉽다는 점도 강조해야겠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나야말로 주방일기 소재가 없어 애태우다가 이 책을 구세주 같이 요긴하게 사용하였으니 더 바랄 것이 무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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