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전 앞에는 머리가 두 개 달린 스핑크스가 서 있다고 한다. 뒤로 향한 머리는 지난날을 반성하며 뒤돌아보는 얼굴이요, 앞으로 향한 머리는 다가올 날을 설계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를 그려보는 얼굴이라고 한다. 인간이 꿈을 꾸고 설계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바람은 있다고 본다.
그 날 나의 목은 보조대로 고정되어 있었고 허리와 다리도 움직일 수 없도록 붙들어 매어 있었다. 그리고 가슴 위에 포개 얹혀진 양손은 가들가들 떨리고 있었다. 이마도 흔들리지 않도록 넓은 천으로 가볍게 누르듯이 묶여져 있었다. 도로가 울퉁불퉁 한 건지 운전 솜씨가 거친 건지 차가 심하게 덜컹대며 흔들렸다.
바라보이는 벽에는 소리가 소거된 채 화면만 살아있는 텔레비전이 한 대 놓여있고 방금 사용했던 혈압계에서는 180이라는 숫자가 나더러 보라는 듯 깜박대고 있다. 응급실 작은 방 침대 위에 혼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나.
방금 전까지 그 누가 누웠다가 간 것일까? 체온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미지근한 느낌이다. 한번 가버린 남자 간호보조원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간호사들도 그냥 스쳐 지나갈 뿐 몇 시간이고 그냥 방치해 둔다.
사고가 났을 당시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회전을 하려고 깜박이 신호를 주고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하얀색 밴이 정지를 하면서 손짓을 한다. 양보의 미덕을 뿌리칠 수 없어 오른쪽으로 차 머리를 내미는 순간 탱크처럼 돌진해오는 또 다른 차량의 머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시야 가득 들어찬다.
순간 팔과 다리가 사시나무 이파리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겨우 가슴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운전석 반대편으로 기어서 자동차 안을 탈출했다. 다음순간 경찰차와 소방차, 앰뷸런스의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졸지에 중환자 형색으로 들것에 실려 이곳으로 온 것이다. 자동차가 대파했는데 그래도 많이 안 다친 것이 행운이다.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말들이 귓속으로 파고들면서 다소의 안도감도 찾아든다.
아, 그래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이구나. 그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머릿속이 텅 비고 하얗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창피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프게 조였던 목 보조대도 풀고 팔도 다리도 자유로워졌다. X 레이 찍을 차례만 남은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어있던 빈 의자에 어느 사이엔가 흑인 머슴애 하나가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빈 복도에 흰 티셔츠 차림으로 앉아있는 그 소년은 열 살 정도 될까 말까 한 나이다. 영양 상태가 좋아 보이고 입술은 두텁고 통통한 볼의 살에 묻혀 두 눈이 조금은 작다는 느낌이 든다.
무료하고 지루하고 짜증까지 나려던 참에 소리 없이 나타난 그 소년이 반갑기까지 하다. X-Ray 기사가 내 침대를 밀고 그 소년의 옆으로 지나갈 때 고개를 돌리면서 그 소년과 눈이라도 맞추려고 했지만 멍한 시선으로 방 쪽만을 바라본다. 목과 허리 입안까지 사진을 찍고 되돌아 나오는데 긴 복도 끝까지 갑자기 사람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마미, 마미, 노, 노,,,,” 그 소년 옆으로 내 침대가 지나갈 때 상반신을 일으켜서 그 애를 보았다. 눈물이 열린 수도꼭지에서처럼 줄 줄 줄 흐르고 붉은 입술을 하얀 윗니로 문 채 울고 있다. 아이는 슬픔의 강물 위에 자신을 띄우고 마냥 그렇게 울고만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빈방으로 돌아왔다.
눈물을 닦고 있는 그 주먹을 꼭 쥐어 주고 싶기도 했다. 그리스 신전의 스핑크스처럼 앞날을 설계할 땐 자식들과 가족이 어렵고 외로울 때 함께 하기를 희망했었다. 그건 그냥 희망이요 바램인 걸까? 다친 곳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차가운 복도에 멈추어 섰다. 울음을 그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는 곧 괜찮아 질 거야” 웃으면서 눈으로 말해주었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사고가 일어난 뒤로부터 여섯 시간이나 시간이 흘러간 것을 알았다. 차가운 밤바람이 살갗 위로 내려앉고 달빛은 째지게 밝았다. 그렇지만 내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소년처럼 나도 주먹을 쥐고 눈물을 닦았다.
홍민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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