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는 금이 없나. 없다. 어떻게 알 수 있지. 영국이 달로켓을 쏘지 않으니까. 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영국인 아닌가. 달에 금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먼저 갔을 걸.
퍽 오래 전 유행했던 ‘영국인 비꼬기’ 조크다. 아닌 게 아니라 돈, 다른 말로 자본주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민족이 앵글로-색슨이다.
자본주의의 경전 ‘국부론’은 앵글로-색슨의 아젠다다. 프로테스탄트 청교도주의. 산업혁명. 이런 단어들도 어딘가 앵글로-색슨의 냄새가 짙다. 자본주의가 앵글로-색슨 전통에, 또 청교도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건 고전이 돼 있다.
요즘 들어 해석이 조금 달라지는 경향이다. 이민, 특히 ‘유대인들의 이산’이 자본주의 발달과 상당한 연관이 있다는 견해다. 베르너 롬바르트 같은 사람이 펴온 주장으로 자본주의는 다름 아닌 유대인의 소산이라는 거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대인의 이산과 풍요는 상관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그 케이스의 하나가 신대륙 발견 후 스페인에서 유대인을 추방했을 때 나타난 현상이다.
당시 스페인에는 신대륙에서 막대한 양의 은이 유입됐다. 이는 그러나 오히려 재앙이 됐다. 유대인 추방과 함께 금융업이 시들면서 그 막대한 은은 인플레만 유발, 스페인 경제는 이후 쇠퇴하고 만다.
유대인들을 받아들인 곳은 네덜란드다. 이와 동시에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은 유럽의 상업과 금융 중심지로 부상한다. 유대인들이 금융의 노하우를 전해준 덕분이다.
유대인 이산의 가장 큰 수혜자는 영국과 미국이다. 17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반(反)유대주의 제도가 모두 철폐됐다. 그 결과 유대인들이 모여들고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다. 그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미국은 오늘날까지 세계적인 경제 지배권을 누리고 있다.
“유대인들은 독특한 재정적 재능으로 유럽의 근대국가 형성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유대인이야말로 근대 자본주의의 체현자(體現者)다.” 롬바르트가 한 말이다.
자본주의의 발달사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축복의 원리라고 할까, 포인트는 그걸 발견하자는 데 있다.
유대인뿐이 아니다. 박해받는 자, 가난한 사람, 이런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신천지에서 그들은 자유를 누리며 부를 축적한다. 그 사회는 결국 지상에서 가장 풍요한 사회가 된다. 이민이 축복의 통로라는 말로, 미국 이야기이다.
축복의 원리를 뒤집으면 저주의 원리가 된다. 종교 사학자 폴 존슨은 반(反)유대주의를 일종의 지적 질병, 그것도 전염성이 강한 질병으로 보면서 그 질병에 걸린 사회에는 자기 파괴의 재앙이 따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수 없이 많은 전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제정 러시아의 케이스. 러시아에 반 유대법이 제정된 건 18세기 말이다. 폴란드 점령과 함께 많은 유대인을 껴안게 되자 제정 러시아는 유대인 박해령을 발동한 것. 또 한 차례의 엑소더스가 발생한다.
서구, 특히 영국과 미국으로의 유대인 대규모 이동이 이루어지면서 앵글로-색슨의 나라에는 경제, 문화적 혜택이 돌아간다. 러시아에 남은 건 빈곤이다. 압제다. 그리고 그 압제의 시스템은 행정의 부패를 가져왔다.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인종과 관계없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했을 때, 나그네 된 사람들을 핍박했을 때 저주가 따른다는 말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물론 축복이 임하고.
그 케이스의 하나가 전후 독일이다. 전쟁 직후 소련팽창의 여파로 1,100여만의 독일계 난민이 발생했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한 노약자들로 생산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당시 서독의 경제적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배급으로 연명해갈 정도.
그러나 이들을 모두 받아 들였다. 얼마 후 아무도 예측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들 난민이 ‘라인강의 기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 역할을 해낸 것이다. 이어 통일 전까지 800여만의 동족 난민을 받아들였다.
“한국인은 김정일의 인권유린에 왜 분노하지 않나.” 벌써 3주가 됐나. 탈북자 강철환씨를 만나 부시 대통령이 이 말을 한 게. 그 말이 계속해 정수리를 때린다.
준엄한 논고로 들려서다. 동족의 고통과 관련해 한국은 부작위 죄, 작위 죄 모두를 범하고 있다는. 북한 주민의 참상을 철저히 외면한다. 그도 모자라, 탈북자의 한국행을 방해한다. 이러고도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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