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영국의 학자 새뮤얼 존슨 박사의 경구다. 선의만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경구에서 제목을 따온 ‘선의로 포장된 길’(Paved with Good Intentions)이란 책도 있다. 재릿 테일러가 쓴 이 책의 내용은 소수계 보호 조치(affirmative action)에 관한 것이다.
저자가 볼 때 좋은 의도로 시작됐으나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 사회 정책의 대표적 케이스가 바로 이 어퍼머티브 액션이다. 취직이나 도급 공사, 대학 입학시 소수계를 우대하는 것을 괄자로 하는 이 조치는 1964년 통과된 연방 민권법에 규정된 ‘평등하게 보호받을 권리’에 기초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치가 소수계가 차별 받는 것을 넘어 객관적 조건이 떨어지는 경우에도 우선권을 준다는 데 있다.
여러 분야 가운데 소수계 보호 조치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교육이다. 현재 미국 대학에서는 인종에 따라 입학 기준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백인보다 성적이 훨씬 떨어져도 명문대 입학이 가능하다. 아시안은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 현저한 소수계임에도 이들보다 엄격한 자격 요건이 요구된다.
성적만으로 하면 아시안 입학 비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인종 다양화를 위해 더 좋은 자격을 구비하고 있더라도 아시안을 탈락시키고 있다는 것이 대학 측의 설명이다. 소위 명문고에서 공부 잘하는 아시안 신청자가 너무 많이 몰려들자 명문고 출신 입학을 제한하고 좀 떨어지는 학교에서 우등을 한 학생을 받는 곳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어처구니없게 좋은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2류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한인 학부모까지 생겼다.
미국 대학에 아시안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와 같이 불리한 제도 하에서도 UC 버클리와 UCLA 신입생의 거의 절반을 가주 인구의 12%에 불과한 아시안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프린스턴대 보고서에 따르면 만약 흑인과 소수계에 대한 우대 조치가 사라지고 모든 인종을 성적에 의거, 공평하게 심사할 경우 흑인 입학률은 현재 34%에서 12%로, 히스패닉 학생은 27%에서 13%로 급락하며 이들 자리의 80%를 아시안이 메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이같은 어퍼머티브 액션의 모순점이 논의된 지 오래됐다. 1978년 앨런 바키가 백인이란 이유로 좋은 성적을 가지고도 UC 데이비스 입학이 거부됐다고 소송을 제기, 승소했고 1996년에는 가주 대학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을 폐지하는 프로포지션 209가 통과됐다. 그 이후 노골적으로 인종을 기준으로 차별하는 것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사회 경제적 요소‘를 고려하는 사실상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남아 있다.
2003년 연방 대법원은 미시건 대 케이스를 재판하면서 포인트 제를 도입해 명백하게 소수계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불법이지만 폭넓은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 소수계를 우대하는 것은 한시적으로 허용한다고 판시했다. 미 국민들도 대법원도 소수계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주는 것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캠퍼스의 인종 다양화는 좋은 일이지만 어거지 다양화는 인종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어퍼머티브 액션의 덕으로 명문대에 어렵게 진학한 소수계들은 대학 재학 기간 중 내내 ‘2등 학생’이란 열등감과 역차별 당하고 있다고 믿는 백인들의 분노에 시달려야 한다. 거기다 이들 소수계의 중도 탈락율은 백인과 아시안의 2배가 넘는다. 조금만 낮춰 갔으면 자신도 졸업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길을 열어줄 수 있었을 텐데 이중으로 귀중한 인력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한인을 비롯한 많은 아시안 학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자녀 교육에 열심이다. 자녀가 실력이 모자라 못 들어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공부를 잘 하는데도 과거 백인들이 흑인과 히스패닉에 저지른 잘못을 배상하기 위해 자신의 자녀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 않겠는가.
역사적으로 따져 보면 중국계는 ‘중국인 배척법’ 등으로 흑인 못지 않게 차별 당했고 일본계는 제2차 대전 중 여러 인종 중 거의 유일하게 사실상 재산을 몰수당하고 강제 수용소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이들에게 우대는 하지 못할망정 역차별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대학 입학시 아시안에 대한 역차별은 하루 속히 미국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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