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죽 먹어보셨어요?”
이곳 양로보건센터에 나오시는 한 할머니가 아침 식사로 드리는 야채죽을 잡수시다 내게 물어오셨다. 물론 나는 먹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해드렸다. 한국동란 직후 먹을 것이 없이 궁핍했던 때에 가끔 먹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시래기 죽도 차이가 많다. 쌀이나 보리가 들어가면 그나마 먹기 괜찮았지만 밥알을 셀 정도가 되거나 풀을 묽게 쑤어 만든 시래기 죽은 정말 먹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연세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돈이 있어도 쌀을 구하기 힘들었던 일정 말기, 혼란했던 임정 초기, 그리고 6.25 전쟁등의 곤궁한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다 모인 자리에서 물어보았다.
“시래기 죽 먹어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하니까 많은 참가자들의 손이 올라갔다. “그 때에는 다 그랬어”, “다들 힘들었지”하시며 잠시나마 그때를 생각해보는 듯 했다. 모두의 표정에 웃음이 있었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생활이 얼마나 좋은지 감사하다는 말들이 여기 저기서 나와 계획에 없던 감사의 향연이 펼쳐졌다.
시래기는 긴 겨울 나기 위해 어느 집에서나 준비하는 채소로 이를 보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김장철에 무를 쓰고 난후 무잎을 모아 엮어 말린 것인데 영양소가 잘 파괴되지 않게 그늘에 걸어두어 얼었다 녹았다 하며 서서히 말려 보관했다. 지금 처럼 늘 푸른 채소 과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던 때 겨울나기 반찬용으로 자주 사용되었지만 잘 살게 되면서부터 이러한 반찬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센터에 나오시는 가장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는데 1906년 생이시니까 아흔아홉이 되신다. 아직도 건강하시다. 기억력도 좋으시고 얼굴도 70세 정도로 젊어 보이신다. 지팡이를 집고 본 센터에 나오시지만 이 안에 들어서시면 지팡이를 한편에 던져 놓으시고 잘 다니시며 하루에 두시간 정도 여러가지 운동기구를 사용하시며 건강을 다지신다. 식사도 잘하시고 다른 큰 질병이 없으시니 내년에는 100세 생신 잔치를 크게 차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께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비결이 무엇인지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뜻 밖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마 옛날에 잘 못먹고 살아서 그런 것 같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재촉하였다. “옛날에 잡곡밥 늘 먹으며 소식했었지. 없었으니까, 그리고 기름진 음식 별로 먹지 않은 반면에 일(운동)을 많이 했으니까”하시며 얼마 전 건강 강의 시간에 드린 내용과 비슷한 말씀을 하고 계셨다.
사실 시래기로 만든 죽이나 반찬은 별 영양가가 없고 가치 없는 쓰레기 음식이려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음식속에는 다량의 섬유질과 각종 비타민, 무기질이 함유되어 있는 반면 칼로리는 적고 콜레스테롤과 기름기가 없는 소위 요즘 말로 건강 음식이요 다이어트 음식이며 미용 음식이다.
선진국의 상위 사망 원인으로 심장병, 암 그리고 동맥 질환을 꼽는다. 이들은 주로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으로 조금만 주의한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병들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 미국의 암협회가 암 예방을 위하고 심장협회가 심장병 예방을 위해 추천하는 중요한 제안사항들이 있는데 이를 보면 두 협회의 추천 내용이 동일한 것에 놀라게 된다.
▲ 금연하라. ▲ 비만을 피하라. ▲ 섬유질을 더 많이 섭취하라. ▲ 육류를 적게 먹고 더 많은 과일과 채소를 먹으라. ▲ 정규적으로 운동하라.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라도 시래기 죽을 자주 먹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평웅 보건학 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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