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요즘 한인사회에 결혼과 관련,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짝 찾기도 어렵고 또 자식이 어
쩌다 배우자감을 데려와도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많아 자녀대신 부모들이 조건에 맞는
짝을 찾기 위해 중매를 시도하고 있는 것. 이는 명문대학 출신이나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한
인들이 주로 선호하는 전문직 자녀를 둔 집안이나, 어느 정도 경제가 안정된 집안에서 자녀의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 한국에서처럼 부모들이 나서 짝을 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짝 찾기가 어렵고 얼마나 마음에 드는 배우자 만나기가 어려우면 부모들이 이처럼 한국
도 아닌 미국에서 중매를 하려고 드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서 자란 아이들이 중매로 결혼
을 했을 경우 과연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상대방을 잘 만나 다행히 별 문제없이 잘 사는 커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표면상으로
보이는 학교나 돈, 그리고 집안 등 조건 위주로 배우자를 정한 경우 과연 그들이 결혼생활에서
행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어느 가정의 잘 나가는 한 한인 변호사는 어머니의 중매로 한국의 유명한 집안 딸과 지
난 해 뻑적지근하게 결혼했다. 쌍방이 혼수도 엄청나게 많이 주고받고 예식도 모두 부러워하는
가운데 값비싼 호텔에서 하객이 거의 천여명이 올 정도로 요란하게 했었다. 그런데 이들의 결
혼생활은 1년도 채 못 가고 말았다.
또 이곳 어떤 집안에서도 요즘 명문대 출신의 한 변호사와 잘 나가는 컨설턴트와의 결혼이 깨
지기 직전에 놓여 본인은 물론, 부모들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이들도 역시 주위에서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잘 나가는 커플이었다. 그런데 조그만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대방의 실수를 용
서하고 받아들이며 이해해줄 마음의 여유나 관대함, 사랑이 없어 얼마 못 가 헤어지고 말았다.
이들도 역시 결혼당시 혼수를 많이 주고받았지만 서로 자존심과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
를 쓰다 결국 지쳐 이혼에 합의했다. 출세 지상주의로 뛰던 이들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었으나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혼’ 에서는 그만 실패자가 된 것이다.
결혼은 남녀가 서로를 잘 알고 서로 사랑을 기초로 해야 하는데 억지중매 또는 우연히 만나 조
건만 보고 하다보니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요즈음은 이곳도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중매가
성행이라고 하는데 위험부담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상대방의 성격이나 품성도 잘 모르면서
덮어놓고 조건만 보고 하다 금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건은 결코 행복의 요소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서로를 잘 모르는 게 부부사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하물며 서로 깊이 알지도 못하고 사랑도 않으면서 조건만 보고 결혼한다면 실패할 확률
이 매우 높다. 왜? 인생이란 결코 승승장구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생의 질곡을 건너갈 일이 생길 때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걸어간다면 훨씬 더 쉬운 일이 아닌가. 표면에 드러나는 지식이나 외모, 직업이나 부의 척
도도 중요하지만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의 내면이나 품성, 성격을 알고 서로 이해하고 쌍방간 사
랑을 바탕으로 인생을 산다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사랑하는 남녀가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울 일이다.
웹사이트에 보니 한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별로 좋지 않은 조건의 배우자와 결혼하는 문제를
이슈로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어머니들의 의견은 ‘시켜야 된다’ ‘안 된다’며 팽팽하게
엇갈렸다. 찬성 쪽은 ‘결혼은 서로의 사랑이 우선’이라는 주장이고, 반대쪽은 ‘본인이 아무
리 상대를 죽고 못살 만큼 좋아해도 조건이 나쁘면 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를 보면 아무리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있어도 경제적인 문제나 명문학교, 또는 명문가 등
잘 나가는 조건들을 좋아하는 것은 지금도 옛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과거에 죽자
사자 연애 결혼한 어머니들까지 막상 자식의 결혼에는 ‘좋은 조건’을 ‘사랑’보다 더 원한
다. 내가 만일 이런 경우에 놓인다면 과연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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