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은 아버지의 날이다. 어머니의 날에 비해 자칫 소홀하게 넘어가기 쉬운 이날을 앞두고 아버지를 기리는 독자글을 싣는다.
90세 생신
아버지, 이렇게 아버지의 90세 생신을 축하하는 귀한 자리에 오신 많은 친구 축하객 속에서 오늘 아버지는 행복해 보이십니다.
사랑의 편지를 존경하는 아버지께 쓰고 있는 제 마음도 무척이나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파란만장한 험한 세월을 보냈던 야곱과 같이 한국이 겪었던 온갖 험난한 세월을 함께 걸으며 전쟁과 일제 치하의 어둡고 어려웠던 시대를 꿋꿋이 헤쳐나가신 아버님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유난히 정열적이고 투지가 넘치시며 무엇이든지 “그래 그렇게 하자” 하며 한번도 “No!”라고 하지 않으시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신 아버님께서 이제는 90의 나이에 도전장을 내셨습니다. “태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는 변하여 평지가 되리라” 는 말씀을 좋아하시며 지금도 진리를 위해 투쟁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꿈을 가지고 계시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아직도 청년이십니다. 인고의 세월 때문에 얼굴에는 주름살이 생기셨지만 인생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으셨기에 아버지는 아직도 만년청년이십니다.
인생을 사랑하시고 시 쓰는 것을 좋아하시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시고 사진을 좋아하시고 친구들을 좋아하시고 어디든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시고 남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남이 말하는 것은 곧이곧대로 듣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셨기에 아버지는 아직도 청년이십니다.
이렇게 인생을 항상 긍정적으로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가졌기에 저는 이 시간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의 가슴에 좋은 그림을 항상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낙심할 일이 생길 때에도 아버지를 바라보면 언제나 힘이 솟아납니다.
아버지의 뒤에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또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자주 아팠던 제가 밤중에 눈을 떠보면 그때까지도 주무시지 않고 제 곁에서 기도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은 제 가슴에 좋은 그림으로 살아 있습니다. 아버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어머니의 자상한 내조와 기도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빠듯한 생활 속에서도 한번도 네 자녀의 등록금을 늦게 내 본적이 없었고 오히려 남에게 꾸어줄 수 있었던 것은 다 어머니의 절약과 지혜와 희생과 기도의 덕분이었습니다.
금년에 결혼 65주년을 맞이하시며 85세의 나이에도 지혜와 기도가 여전하신 어머니를 아내로 가지신 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해 보이십니다. 이렇게 좋은 육신의 아버지와 함께 저에게는 영의 아버지가 계시기에 저는 오늘 큰 행복을 느낍니다.
이혜경 LA
누룽지 사탕
팬트리를 정리하는데 사탕 한 봉지가 모퉁이에서 툭 떨어져 나왔다. 병원에 계신 아버님께 갖다 드리려고 꼭꼭 감춰 두었다가 찾지 못한 누룽지 사탕, 틀니 때문에 입에 그냥 물고 계시면 “그 구수한 맛이 이렇게 좋구나” 하시며 미소지으시던 얼굴이 뭉클 떠오른다.
아버지는 평안도 진남포에서 태어나셨고 토지와 어선을 소유하셨을 뿐 아니라 정미소를 차리셨던 할아버님 밑에서 진남포 상업 고등학교 나오셨다. 일본 유학까지 가셨으나 외아들이라는 할머님의 만류로 방학 때 학업을 중단하시고 돌아오셨다.
향년 86세로 “가화 만사성”을 가훈으로 삼으시고 저희 6형제 자매와 11명의 손자손녀 직계 26명의 온 식구들에게 몸소 실천하셨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 수영으로 갖춰진 기질 탓이었는지 TV 운동 중계를 몹시 즐겨 보셨다. 특히 다저스 야구팀의 선수들 이름 하나하나 외우시며 열렬히 응원하셨다.
매사에 규칙적이었고 정돈 말끔히 잘 하시고 이민 생활에서 철저히 검소한 생활인이셨다. 편찮으시기 시작하자 중탕한 배즙을 만들어 갖다 드리면 잘 잡숴 주셔 고마웠다. 둘째 누이와 함께 차를 끓여 드려 심하시던 기침이 많이 가라 앉으셨다.
애들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찾아뵈면 한국의 정세를 말씀하시는 아버님의 눈빛은 유난히 생기 있고 반짝이며 빛났었다. 정의 편에서 가하시는 건설적인 비판, 그러다 미국 아니 세계 정세까지 이라크 전쟁이라든지 두루 넓은 관심의 폭을 보여주셨다.
어렸을 적부터 믿어 오셨던 기독교의 잘못된 병폐와 기독교인들의 바르지 못한 생활과 사고를 지적하시곤 했다. 그래서 마치 신앙이 없으신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으나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구원을 믿고 받아드리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장손인 저희 아들 어렸을 때 키워 주셨고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셨다. 맏아이 박사학위 받았을 때 무척 통쾌해 하셨다. 평소에 과묵하셔서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정을 크게 표현하시지 않으셨는데 편찮으신 후로는 참으로 재미있게 말씀 많이 하셨다. 이북의 고향얘기, 월남후의 얘기, 할아버지, 할머님의 추억을 포함하여 아마도 아버님의 기억의 창고에 깊숙이 잘 간직해 놓으셨던 생각들이 은실타래에서 술술 풀어져 나오는 듯 했다.
나도 미처 잊어버리고 있었던 친정 아버지, 형제들의 얘기 물어 보시고 제자들이 만들어 드린 아버지의 흉상과 묘택까지 기억하심에 그만 놀라고 감탄하고 말았다. 아버님이 떠나가신 자리가 이렇게 텅 비고 쓸쓸할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무거운 육체의 고통. 삶의 끈과 짐을 다 끊어 버리시고 훨훨 새처럼 날아가신 듯 하다. 천상으로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혼이 되어. 오늘 꽃다발과 누룽지 사탕 봉지를 아버님께 조용히 놓아드린다. 천국 가신 후 맞이하는 첫 아버지날이기 때문이다.
안순희 하시엔다 하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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