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가 아직도 느껴진다. 벌써 며칠이 지났나. 그런데도 그 흥분이 식은 것 같지가 않다.
처음 들려온 뉴스는 ‘0-2’의 패배였다. 북한 대 일본의 월드컵 예선경기 결과다. ‘아, 그랬군.’ 어려우리라 짐작은 했지만…. 부지부식간 신음 같은 게 토해진다.
다시 전해지는 뉴스는 2-0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들리는 소식은 4-0이라고 했다. 한국팀이 ‘어웨이’ 경기에서 쿠웨이트를 대파했다는 거다. 순간 ‘붉은 함성’이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먼바다에서 몰려오는 거대한 해일처럼.
인터넷을 통해 경기상보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그 흥분, 그 열기가 체감으로 전해진다. 말못할 희열이 전류처럼 흐른다. 몹시 실망한, 그래서 더 초췌해 보이는 북한 선수들의 모습이 한 쪽으로 어른거리면서.
조울증 환자. 다른 표현이 언뜻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 마치 조울증 환자 같다. 그래보아야, 한 구기 경기 아닌가. 그 결과에 온 나라가 울고불고 난리라니. 축구가 도대체 뭐길래….
축구는 인민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흐리는 아편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의 정의다. 축구가 브루주아에서 비롯된 데서 내려진 정의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와 민족, 인종, 종교에 따라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고 상대에 대한 적의를 ‘공차기’란 비폭력적 형태로 분출하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그 저자인 프랭클린 포어의 정의다.
축구에 녹아든 민족주의, 정치문제, 인종차별, 종교갈등 등의 현상을 분석하면서 내린 정의다. 그에 따르면 세계화시대에 축구는 이미 세계인들의 삶 깊숙이 침투한 하나의 사회제도라는 것이다. 축구는 말하자면 이제는 이데올로기이고 세계화 시대의 종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인용이 길어졌다. 이야기의 중심은 그러나 다른 게 아닌 것 같다. 축구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라는 메시지다.
하기는 축구처럼 정치 바람을 가장 많이 타는 스포츠도 없다. 과거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군사정권이 정치선전과 통제수단으로 축구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 흔적은 ‘축구에 들뜬 나라들’에서 오늘날에도 발견된다. 아르헨티나가 그렇고, 이탈리아가 그렇다. 한국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일본에게는 무슨 수를 써도 이겨야 한다. 대표선수는 ‘태극전사’로 통칭된다. 그리고 그 태극전사가 뛰는 경기에만 열광한다.
A매치 때만 ‘붉은 함성’에 ‘붉은 물결’이 넘쳐나는 ‘붉은 악마 신드롬‘.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축구가 스포츠 민족주의의 전형으로 자리잡은 탓이다. 이런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축구는 그러나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내셔널리즘이 바탕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그 한계를 뛰어 넘는다. 그럴 때 축구는 세계화의 강력한 도구가 되고 평화의 상징이 된다는 말이다.
“축구는 국가와 국가간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의 표현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서 민주적인 것이다. 월드컵은 모든 차별에 맞서서 인류의 하나됨을 선포하는 것이다.” 서울-도쿄 월드컵과 관련해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이 한 말이다.
감정의 골이 여간 깊은 게 아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그러나 함께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는 이를 세계화가 가져다 준 가장 큰 행복으로 보았던 것이다.
한국축구가 4강 신화를 이룩했다. 거기다가 월드컵 본선 6회 연속출전의 대기록을 세웠다. 엄청난 발전이다. 뭘 말하나. 민족주의 스포츠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세계화로 나갔다. 그 결과 쏟아진 축복이 아닐까.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잉글랜드 월드컵 8강의 기적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전설일 뿐이다. 세계는 좁아졌고, 축구무대에는 정보가 폭주한다. 분명한 건 북한 축구가 세계 축구의 흐름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본에 0-2로 패배한 북한 축구를 보면서 한 한국의 젊은 기자가 밝힌 소감이다.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해 성장이 중지된 청소년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폐쇄된 북한 체제의 한계에서 찾았다.
“그는 요즘 전 국가적 화두다.” 박주영에게 쏟아지는 찬사다. 차두리의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박지성은 어떻고…. 밝은 태극전사들의 모습이다. 그 위에 잔영이 덮친다. ‘인민전사’라고 해야하나, 같은 또래의 북한 대표 선수들이다. 몹시 지쳤다. 피곤하다.
“일본에게 패배해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는 거 아냐.” 누가 한 말이던가. 그 말이 자구 떠올려진다. 그들의 어두운 표정과 함께.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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