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워터게이트 사건의 수수께끼 인물 ‘딥 스로트’의 신원이 공개되었을 때, 신문기자로서 한가지 의문이 있었다. 연방수사국(FBI)의 제2인자였던 마크 펠트가 어떻게 1년차 어린 기자와 그런 ‘도박’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 정도 위치의 인물이, 그 정도로 위험한 제보자 역할을 하려면 상대가 적어도 친분 깊은 중견기자는 되었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 의문은 2일 풀렸다.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부국장이 펠트와의 인연을 신문에 상세히 공개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1970년 어느날, 예일대 출신 해군 중위였던 우드워드는 서류 전령으로, 펠트는 필경 FBI 업무차 백악관에 갔다가 대기실에 나란히 앉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 우연한 만남이 두 사람을 일생의 중요한 인연으로 얽어맨 데는 청년 우드워드의 절박함이 한몫을 했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던 당시 그는 자신의 진로 문제로 몹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정해진 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느 길로 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는 힘있고 도움이 될 것 같은 펠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자문을 구했고, 처음 뜨악하던 펠트도 그에게 마음을 열면서 두 사람의 교분은 시작되었다고 했다.
35년전 장래가 불투명하던 몇 달간의 심정을 이야기하면서 우드워드는 ‘절박함’‘불안함’‘표류하는 느낌’같은 표현들을 썼다. 졸업 시즌인 요즈음 그런 막막함을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졸업이란 한쪽은 끝, 다른 한쪽은 시작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인데, 끝만 있을 뿐 시작할 무대가 없는 젊은이들은 허공을 디딘 듯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취업시장이 상당히 좋다고 평가하지만 주변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취직 못한 채 짐 싸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졸업생들이 많이 있다. 취업난이 심각한 한국에서는 20대의 취직을 ‘가문의 영광’이라고까지 한다지만, 미국에서도 원하는 수준의 직장을 잡자면 경쟁이 보통 치열한 것이 아니다.
왜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누구는 취직을 하고, 누구는 못하는 것일까. 4년 전 집안의 자랑이었던 명문 대학 입학생이 왜 졸업할 때는 취직을 못해서 부모의 애물단지가 되는 것일까.
SAT 점수, AP 성적에 자녀 교육의 초점을 맞추는 한인 부모들이 이제는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미국에서는 일류 대학 졸업장이 일류 기업 취직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3년전 UC계열 대학 졸업 후 주류사회 대기업에서 일하는 한인 여성은 “어느 대학이냐 보다 대학 생활을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수한 대학 졸업생에 대해서는 그만큼 기대치가 높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격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 대기업들의 신규 채용 시즌은 가을입니다. 9월부터 각 대학에서 회사 소개 행사들이 열리고 이력서 접수, 서류 심사, 3~4차례의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가 결정됩니다. 그 과정을 모두 통과해서 12월까지 취직 계약을 맺고 나면 한숨을 돌리게 되지요”
산더미같이 쌓이는 이력서 중에서 뽑히고, 여러 차례의 까다로운 면접을 통과하려면 ‘준비된 일꾼’이 아니고는 힘들다. 지원하는 기업에 관해 사전에 충분한 공부를 하는 것은 기본. 아울러 실무 경험을 위해 적어도 2학년 때부터는 인턴십을 시작하고, 클럽 활동을 통해 네트웍과 리더십을 키우는 실질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탐나는 재목’으로 길러내는 대학 4년의 프로젝트이다.
대학은 무궁무진한 자원을 간직한 산맥과 같다. 그러나 그 산에 오른 학생들의 경험은 같지 않다. 산 위에서 놀다가 그냥 내려올 수도 있고, 치열하게 광맥을 찾아 파고 들어가며 숨겨진 보물을 캐낼 수도 있다.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도 도착 지점에서는 저마다 다른 모습인 것이 대학생활이다. 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열정이라고 본다. 배움에 대한 열정,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정이다. 대학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은 아이들의 열정을 격려해야 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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