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병역미필자의 국적 포기를 막는 개정 국적법이 통과되면서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빚어졌다.
국적 포기를 둘러싸고 한국에서 빚어지는 이 현상은 미국에 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 중에 이미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고, 아직 이중국적 상태에 있는 사람도 있고, 앞으로 미국 국적을 얻을 사람도 있고, 그래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게 될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은 우선 애국적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근거로 한다. 아무리 무엇이 어떻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낳아 준 부모의 나라, 조상들이 묻힌 나라를 버릴 수 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난은 이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비난 같이도 들린다.
자녀의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부모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서 아이를 외국 사람으로 만들면 과연 아이가 제대로 잘 성장하겠느냐고 성토한다. 자녀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게 되는 정체성, 즉 아이덴티티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이것도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이다.
국적 포기를 신청하는 사람 중에 사회 지도층이 많이 있는데 이는 결국 한국인들의 한국의 정치, 교육 현실에 대한 실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우울한 분석도 있다. 이 역시 한국보다 미국이 나으리라는 생각에 여기서 살기로 결정을 한 우리들에게 한때 적용되던 분석이다.
국적은 통상 어디에서 어떤 혈통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으로 정해지므로 (한국의 이른바 ‘원정출산’이라는 기현상은 제외하고) 원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동질성이 크고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강한 나라는 어디서 태어나던 한국인에게서 태어나면 한국인이라는 속인주의 또는 혈통주의를 적용하고 있어 국적의 비선택성, 강제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미국은 속인주의와 아울러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면 다 미국인으로 여기는 속지주의도 택하고 있다. 이는 이민국가인 미국이 취해야 할 당연한 자세이다. 태어날 때는 어떤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성인이 되면 상황에 따라 국적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다 자유주의적인 생각이다. 따라서 미국은 사실상 다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의 국적 포기 논란이 주로 미국 내에서 한국 부모 밑에 출생한 사람들을 둘러싼 문제라는 점을 보건대 이는 한국의 강한 민족주의와 미국의 자유주의가 만났을 때 빚어지는 가치관의 충돌 현상 중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사람은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국적이란 사람들이 살면서 국가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일정한 규율을 제정함으로써 생기는 인위적 산물이 아닌가. 국경은 사람들이 금을 긋고 철책과 담을 쌓음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한국에서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사람이기 전에 먼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자신의 몸과 자신이 태어난 땅은 하나이어야지 둘로 떨어질 수 없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어설픈 구호와도 일치하고, 나아가 마음과 생각까지도 한 곳에 고착되는 ‘심(心)토불이’가 될 수 있고, 결국 감정적, 비합리적 국수주의로 연결될 수도 있다.
원정출산에서부터 외국 유학이나 외국 주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모든 국적 포기에 대하여 일괄적인 규정을 적용함으로써 외국 국민이 되려는 사람에게 한국의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되 겠다.
병역기피를 위하여 국적 상황을 고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을 목적이라면 국적법이 아니라, 또는 국적법과 아울러 국적 포기자의 권리, 의무를 규정하는 병역법, 재외동포법 등 다른 관련 법규를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국적 포기 논란을 지켜보면서 더욱 더 자연주의, 자유주의, 합리주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는 것 같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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