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일리노이주 공인회계사회 연사로 갔을 때 일이다. 파커 하우스라고 기억하는데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유서 깊은 석조 건물로 된 호텔이었다. 전날 도착해서 자고 아침 일찍 나가야 되었기에 항시 하던 대로 조용한 방을 부탁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어디에서 폭발음이 연속 몇 번 나면서 (아래쪽 같았다) 그 큰 소음 때문에 잠이 깨었다. 잠시 창을 내다보는데 아래쪽으로 보이는 정원에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때는 테러 걱정을 하기 전이었던 시절이었고 세상이 조용해서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쓰려고 보니 물이 나오질 않고 전화도 되질 않아서 그냥 전기 면도기로 면도만 하고 대강 얼굴을 타월로 닦은 다음 아침식사나 하면서 어떻게 되었나 보려고 일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벌써 여러 사람들이 임시로 연 조그만 코너식당 앞에 줄을 서있는데 앞에 줄선 분들과 얘기를 하다보니 밤에 지하 개스 파이프가 어떻게 되어서 개스도 물도 나오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그런 얘기였다. 물과 빵 하나로 대강 아침을 때우고 가까운데 있는 공인회계사회 건물로 갔었다.
걸어가면서 여러 생각들을 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큰 호텔 전체에 그런 어려움이 있는데 야단법석은 없고 모두가 조용한 톤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불편한 것을 참으면서도 웃으며 조크까지 해가면서 지내던 것이었다. 누가 그때 호텔에 들어왔으면 거기에 그런 사고가 나서 물도 개스도 없이 불편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터이었다. 그 조용한 것이 필자에겐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한번 상상을 해보았다. 서울 한복판 호텔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조금은 더 시끄럽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때의 그 일이, 아니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일이, 계속 오랫동안 필자의 머리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더욱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난리를 친다고 되는 일이 아닐 때 조용히, 전체 그룹이 조용히, 있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사람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쌓이게 될 때 그 사회가 선진사회라 불리는 것이 아닐까한다.
경제를 키우고 발전시키고 하는데 한국은 여러 해 동안 애썼다. 경제가 지금은 어렵다고 하지만 옛날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전체 본국사회가 그전보다 더 행복할까. 그 것에 대한 대답은 쉽게 그렇다라고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나라를 떠나려고 할까. 미주 한인사회도 그렇다. 그 옛날 올림픽 거리에 아직 유대인 거주인들이 대부분이던 때, 한인 메디칼 센터가 유일한 병원이던 때와 비교해 보면 한인사회는 엄청나게 커지고 경제는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인사회가 훨씬 더 행복한 사회가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대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와 행복감은 반드시 같이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돈이 더 많다고 더 행복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본국에서 반미 얘기를 하며 시끄러운 여러 사람들. 그이들 중 상당한 부분이 자식들은 이 곳에 두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왜 그럴까. 이 세상이 더 좋기 때문이다. 우리 한인사회도 이제 경제 얘기만 떠들지 말고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더 행복하게 살려면 경제도 중요하지만 더 사람답게, 더 성숙한 모습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한다. 우리 좀 더 성숙한 한인사회가 되도록 각자 애쓸 때 본국에서 오는 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올 때 우리 전부는 정말 좋은 곳에 사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이 종 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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