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언젠가 읽었던 ‘곁에 있어 고마워요’란 책 제목이 생각난다. 내용은 서울 MBC방송 ‘여성시대’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내용을 책으로 엮어 모은 것이다. 이 책은 곁에 있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가슴을 흐뭇하게 만드는 아주 향기가 물씬 나게 하는 책이다. 가족, 그리고 이웃, 선생님, 친구 등을 소재로 여러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꾸며진 책인데 이 중에도 많이 나오는 가족의 이야기는 구석구석에 따뜻한 인간미와 소중한 가족사랑이 담겨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특히 시부모와 며느리 관계, 장인, 장모와 사위 사이, 부모, 자식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가정 이야기는 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삶을 이어가게 하는 행복과 희망의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거듭 일깨우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문제가 많은 아이라도 부모한테는 아무 문제도 아니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부모 자식 사이에는 낭비가 아님을 보여준다. 핏줄끼리 서로 부대끼고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하다 보면 물론 힘들 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고 나면 나중에는 모든 어려움도, 고초도 다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사실 이 세상에 부모, 자식만큼 소중한 게 또 어디 있는가. 생각만 해도 부모 자식사이는 가슴
이 찡하고 눈물이 나는 관계다. 어머니날도 보면 어머니에게 돈으로 드려도 되지만 구태여 꽃을 달아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어머니와 자식관계가 아닐까. 식구를 위해 모든 걸 바치는 가족간의 사랑이야기, 또 피를 나눈 가족의 힘으로 어둠과 절망에서 일어나 다시 세상의 문을 열고 가족과 함께 사회인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이야기 등등...
이 책은 이런 것들을 통해 가정의 진정한 행복과 가족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고 또 희망과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통해 또 다른 삶에 대한 도전의식을 갖게 된다. 그 중의 한 이야기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선물’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줄거리는 한 가정의 아들과 학교 길목 시장에서 장사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그 아들은 어느 날 어머니에게 헐레벌떡 달려가 들고 간 꾸러미를 불쑥 내밀었다. 그는 “엄마, 이거 신어, 발 안 시리게“ 하면서 털신을 내민다. 그가 내민 신은 추운 겨울 시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의 발이 시릴 것을 생각, 어머니의 발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
로 산 것이다. 이걸 보고 어머니는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간신히 참고 말하기를 “아버지 없이도 따뜻하게 잘 자랐구나” 하면서 목이 메인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메말라 가는 이 황폐하고 메마른 현대사회에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대화다.
또 ‘당신의 검은 얼굴’이란 제목의 이야기는 한 아내가 얼굴에 탄가루가 범벅이 돼 눈만 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그 모습이 자기를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남편이 살아왔는가. 그 얼굴은 삶의 모퉁이마다 되살아나서 자기 인생의
훌륭한 교훈이 되고 삶의 소중한 지침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힘이 나고 또 내가 앞
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방향을 찾고 ‘생을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각오
를 다지게 된다. 그러면서 “당신의 그 검은 얼굴은 내 마음속에 흑진주 보다 더 가치 있는 보
석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이 아내는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마음이 화평하고 또 어렵고 힘든 세상살이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서로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해 언제나 고맙게 생각되고 자신이 잘못해서 지은 과오나 부족함에 대해 항상 미안해하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가족은 언제나 그리운 것이고 피붙이로 연결된 끊어질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그처럼 소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미국에서 태어난 2세가 부모와 100%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해도 언어와 풍습을 뛰어넘어 다 통하는 게 바로 부모 자식 사이다. 자식의 아픔이나 괴로움, 그리고 부모가 겪는 고통이나 어려움은 서로가 눈빛,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부모 자식 관계는 마치 강물의 물줄기와 같아 그 물줄기가 점점 아래로 향하면서 점점 더 세차게 흘러간다. ‘곁에 있어 고마워요’는 특별히 가정의 달, 내게 더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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