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어린 시절 한국에서 살 때 동네에 부부가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이 있었다. 이들 부부는 자주 싸움을 했었다. 어느 날도 지나는 길에 보니 또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유리창이 깨지고 집기가 날아 가고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그 부부는 다음날 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도 붙이고, 얼굴에 반창고도 붙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 시절 사고방식은 이처럼 싸우다 죽으면 죽었지 ‘이혼’ 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었다. 그래서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부부들도 일단 싸움이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이 당연시 됐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툭하면 이혼을 하고, 가정이 깨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럴 경우 아이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가정 붕괴 또는 가족해체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3, 4대가 살던 대가족 체재에서 핵가족화라는 단위의 가정으로 변화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아파트 문화, 승용차 문화가 가장 큰 원인이 된 것 같다. 옛날 집 가옥 구조는 한 집에 몇 대가 살아도 표시가 별로 안 나는 그런 구조였다.
그러나 요즘 아파트 구조는 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그런 형태가 아닌 것이 문제이다. 또한 승용차 문화도 그야말로 한 단위의 가족이 사용할 수 있지,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닌 것임엔 틀림없다. 그러한 상황들이 핵가족화를 급격히 몰아왔다. 대가족의 해체와 핵가족화를 급속히 진행시킨 것이 70-80년대라면 요즈음은 그 핵가족마저도 해체되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부모와 자녀, 또는 부부간에 다른 도시에서 흩어져서 생활하는 많은 가정을 볼 수가 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또 자녀들이 다른 지방에 대학을 가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또 ‘기러기 가족’이라고 해서 자녀교육을 위해 부부 중 한 사람이 아이들과 미국에 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문제로 가족이 흩어져 사는 경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민문호가 개방된 이후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미국에 와서 신분을 바꾼 후 가족을 초청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 잘못되면 10년, 20년 씩 떨어져 사는 가정들도 적지 않다.
물론, 서로 그리워하다 먼 훗날 그래도 가족이 재결합이 된다면야 그나마 다행한 일이고 해피앤드다. 그러나 그런 일로 인해서 결국은 가족이 영영 해체되고 각자 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겨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단면들은 한인사회의 이민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가족붕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세계 전쟁과 분단 등의 많은 문제와 도전 속에서도 그들은 가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몸부림쳐 왔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양로원에서나 노인들을 통해서 그러한 얘기를 들을 때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 당시 부모세대가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인정도 변하는 것인지 큰 어려움도 없이 쉽게 가정을 포기하거나 가족을 버리는 가슴아픈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그래서 웃는 얘기지만 요사이는 헤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끝까지 잘 사는 부부들을 보면 오히려 대견스러울 정도다. 더 더욱이 형제들이 서로 화목하고 또 부모를 잘 공경하고 하는 그런 가정들은 보기 드문 모범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통해 태초에 가정을 만드셨다. 굳이 성경을 들추지 않더라도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만나는 것이 가정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가장 소중한 가정(부모, 형제, 부부, 자녀)마저도 우리는 쉽게 포기하는 것일까. 우선 순위를 가족
보다 먼저 두고 추구해야 될 또 다른 가치가 있단 말인가. 물질이나 명예, 권력이나 자존심, 그리고 시민권 등등, 그런 것들이 가정보다 더 소중할 수는 없다. 물질과 명예, 권력 등의 소유가 꼭 행복의 조건은 아니다.
‘가화만사성’ 이라고, 집안이 화평해야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온 가족이 행복하다. 가정이 해체되면 돈이고 권력이고 명예고 다 무슨 소용인가. 현대인들은 이 점에 대해 많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다시 한번 이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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