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교육가)
화살표 →는 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사인(Sign)이다. 어렸을 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화살표를 따라가서 드디어 보물을 찾던 만화가 퍽 재미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공공안내 그림표지(픽토그램)이 눈에 띈다.
각종 그림표지를 보고 있으면 한쪽으로 복잡해지는 생활인가 하면, 한쪽으로 단순화되는 부분이 따로 있음을 알게 한다. 나날이 새롭게 출품되는 가전제품을 보더라도 편리하게 만든 기구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복잡한 과정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서 기구의 성능을 충분히 사용하려
면 설명서를 잘 읽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간단 명료하게 변하는 것이 있다. 알리고자 하는 것을 쉽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우지 마세요’가 ‘금연’으로 됐다가 굵은 동그라미 속에 연기가 나는 담배를 그리고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선을 그어서 담배를 가둬버리는 그림표지로 바뀐 것이다. 이런 그림표지는 장점이 많다.
그것을 보는 순간에 의미가 전달된다. 보통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림을 볼 수 있다. 사용하는 언어에 관계 없이 내용을 알 수 있다, 남녀 노소가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을 때의 필요한 요소들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
이다.
그림표지의 종류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음을 본다. 전철을 타고 내릴 때, 전철 안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 공공 장소에서의 예의 등이 곧잘 눈에 띈다. 또한 그것들이 점점 세련되어 가고 있음도 즐거운 볼거리다.
반가운 소식은 안전표지에 대한 국제표준을 정하는데 16개 중 8개가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소식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내리며 작업장 및 공공장소에 쓰일 안전표지 중 한국이 제안한 도안이 다수 채택 되었다고 전한다.
채택된 안전표지를 보면 밀지 마시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머리 위 주의, 화재 위험 경고, 사용 후 전원 차단, 의료용 보안대 착용, 안전복 착용, 손을 씻으시오 등 8종목이다. 이들 디자인은 메시지가 확실하고 여기에 나타난 인물의 얼굴형이 동양인이다. 이번에 채택된 안전표지들이 국제 표준이 되어 전세계에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한국 산업 디자인의 쾌거이다.
사인의 변화 중에는 교통신호가 있다. 초록·노랑·빨강으로 구별을 하다가 근래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빨강 대신 빨간 손바닥을 보이고, 초록 대신 걸어가는 흰 사람을 보여준다. 혹시 색깔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그림을 보면 길을 건널 때 혼돈이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교통신호등의 색깔이 바뀌는 것과 함께 음악을 들려주는 곳이 있었다. 시력을 잃은 사람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들려주는 신호음과 같은 이치이다.
사인에는 색깔·음악·그림·몸짓·소리 등 다양한 것이 있다. 직접 말로 하지 않아도 약속에 따라 그 뜻을 상대방에게 알려 준다. 예를 들면 교통신호등의 색깔, 라디오의 시그널 음악, 안전표지의 그림, 야구 감독의 손짓, 라디오의 시보 등이며 어느 정도 세계 표준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인의 변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정보든지 어느 부류에 치우침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알리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기업의 이윤과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대우를 하겠다는 기본 태세이다.
세계적인 공통언어가 있다면 여러가지 문제들이 쉽게 해결될 것 같다. 한때 에스페란토 연구가 있었다. 1887년에 폴란드의 자멘호프가 고안한 국제어 연구를 말한다. 이것이 비록 성공하지 못 하였지만 국제적인 표준어로 안전표지를 공유하고 있다. 세계는 다 같이 공유하는 것을 찾아
연구를 쌓고 있다.
세계인에게 공유하는 재산이 많아지면 그만큼 상호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상호 이해가 잘 되면 좀 더 서로 사랑하게 되지 않겠는가. 세계인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지키면서 공유하는 것이
있어야만 어우렁더우렁 인생을 즐기는 에너지를 얻을 것 같다. 어떻든 우리는 다같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동시대의 지구 거주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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