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투서예요. 술집 주인들이 돈을 댔다는 거예요. 다된 파출소가 문을 열지 못하고 있어요. 정말 한심합니다”
LA 경찰국의 한 한인 경관이 전화를 걸어와 한인타운 8가 파출소가 투서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며 한탄했다. 술집 운운하는 투서가 들어오자 관할 윌셔 경찰서에서 주춤거릴 수밖에 없고 검은 돈이 아닌지 조사를 끝낸 후에야 파출소 재오픈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대화는 “누가 한 것 같으냐”로 옮겨져 집히는 한인 인사 2~3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그들이 저질러온 비행들이 가십으로 오르내리다가 결론 없이 끝이 났다.
투서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대략 술집 주인들이 불법 영업을 할 수 있으므로 그들은 돈을 내서 파출소를 수리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일 것이다. 혹시 죄를 지어도 파출소에 돈을 댔으니 잘 봐달라는 일종의 청탁성이 될 수 있다는 투서자들의 판단일지 모르겠다.
경찰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구설수에 올라 좋을 것이 없고 경찰서장으로서는 진급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쪽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경찰은 8가 파출소를 시설과 경찰관의 안전문제 등의 이유로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곳보다는 10여블럭 서쪽에 위치한 9가와 웨스턴의 코리아타운 플라자를 선호한다. 그러니 잘됐다 싶어 말썽 많은 이참에 옮겨버릴 수도 있다.
한인타운으로서는 8가 파출소를 놓칠 수가 없다.
파출소가 들어선 8가와 놀만디 일대는 최근 들어 히스패닉 인구의 유입이 많아지면서 히스패닉 상권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파출소가 이 곳을 떠나면 일대의 한인 업소들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이다. 윌셔와 램파트 경찰서 중간에 위치해 순찰의 사각지역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탄생해 오랫동안 치안의 상징으로 자리했던 이곳은 영어 미숙 한인들의 귀와 입이 되기도 했고 간단한 분실물 신고부터 범죄신고, 하소연까지 경찰과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귀중한 연결고리였다.
요즘은 내부 시설이 낡은 데다가 상주 경찰관의 안전문제, 한국어 통역 고용을 위한 시정부 지원의 어려움 등으로 관할 윌셔 경찰서가 발을 빼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러저러한 말들이 오고가면서 파출소를 살리자는 의견이 모아져 십시일반 돈을 모아 방탄유리도 설치하고 초고속 인터넷 접속 라인과 컴퓨터, 새 카펫과 새 페인트로 단장해 근사한 파출소로 새 단장해 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경찰의 재 오픈 결정뿐인데 막판 돌발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술집 주인들이 수리비용을 경찰에 건네준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공사를 해주었는데 문제의 소지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마약이나 범죄 조직에 연루된 돈이 유입됐을 리도 없다. 술집 주인들과 원한 관계에 있거나 아니면 주도권을 빼앗겨 배아파하는 한인들의 소행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나는 못하겠고 남이 하면 배가 아프다는 심보다.
지난 2월 윌셔 경찰서와 한인타운 치안을 절반씩 나누어 담당하는 램파트 경찰서에서 한인경찰위원회 관계자들이 3월부터 한인 민간 방범순찰을 돌겠다고 큰소리 쳤다. 이들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윌셔 경찰서와 손잡고 19년째 활동하는 한인 민간 순찰대 ‘스파트’와 같은 순찰팀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한달간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3월15일부터 순찰을 돌겠다고 했는데 5월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타운 관할 경찰서가 양분돼 통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한인타운 민간 방범마저 양분시키는 것 아니냐는 항의성 지적이 거셌었다. 일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기도 한다.
차라리 스파트팀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면 빛이라도 났을텐데 이루지도 못할 약속을 큰소리치며 해놓고는 흔적도 없이 꼬리를 내리고 있으니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파출소 문제도 그렇다. 누군 지는 모르지만 투서 넣고 방해할 것이 아니라 공사에 돈도 내고 협력했어야 옳았다. 한인단체들이 팔짱끼고 지켜볼 때 술집 주인들은 돈을 내고 파출소 살리기에 앞장섰다. 이들에게 돌을 던질 자가 있다면 당당히 나서는 것도 용기다. 남이 하면 배가 아프고 내가 하자니 돈이 아깝다는 놀부 심보가 아닌가 싶다.
김정섭
<사회부장 직무대리·부장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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