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충돌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처럼 숨가쁘게 확산되던 갈등이 진정되는 기미다. 중·일 양국관계는 진정 화해의 국면을 맞은 것인가. 아니면 일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숨고르기에 쪽 같다.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 같다. 그러나 그 본질은 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미래의 전쟁’이다. 갈등은 그러므로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인가. 뒤로 들려오는 소리가 흉흉하다. 동맹관계 재편성 불가피론, 동북아판 신냉전시대 등이 거론된다. 더 섬뜩한 전망은 ‘아마겟돈 시나리오’다. 동북아를 휩쓸고 있는 맹목적 민족주의 바람. 핵 도미노현상. 이런 것들이 뒤엉켜 대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거다.
예상외의 전망도 나온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장밋빛 스토리다.
10∼15년 내에 동북아시아는 EU(유럽연합)를 능가하는 정치·경제 연합을 구축할 것이다.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가 주축이 된 이 연합-유교(儒敎)연합이라고 하던가-은 미국, EU를 제치고 가장 강력한 블럭으로 부상할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내다보았다. 회교혁명을 예측했다. 이런 크레딧을 쌓은 미래학자 로렌스 터브가 예상한 동북아의 미래다. 그러니 적어도 ‘믿거나 말거나’ 식의 전망은 아닌 것 같다.
감정의 골이 여간 깊은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화언어’를 사용하는 이 세 나라는 머지않아 강력한 연합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 전망을 그는 ‘케이스트 모델’이라는 독특한 역사 발전론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1세기는 ‘상인 케이스트’시대에서 ‘장인(匠人) 케이스트’시대로 변천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상인 케이스트’시대에서는 자본이 곧 파워였다. 이에 비해 ‘장인 케이스트’시대는 테크노크라트와 관료조직이 주도하는 지식의 시대다. 세계 경제의 축이 서(西)에서 동(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개념을 그는 이런 식 역사발전론으로 해석한다.
교육을 특히 중시하는 유교전통 사회야말로 이 21세기형 ‘장인 케이스트’시대에 가장 적합한 사회라는 주장이다. 유교전통은 한·중·일 3국의 공통된 문화유산으로, 동북아 세 나라가 주축이 된 ‘유교연합’이 머지 않아 가장 강력한 블럭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을 제시한 프란시스 후쿠야마나, 문명충돌론을 내놓은 새뮤얼 헌팅턴 식의 거대담론이다. 전망은 전망. 따라서 그 예측이 다 맞으란 법은 없다. 그러나 주목되는 것이 있다. ‘유교 연합’ 형성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그가 제시한 조건이다.
한국의 통일이다. 한반도 통일은 ‘유교 연합’ 형성의 또 다른 필수조건인 중국의 민주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통일 없이 강력한 동아시아 블럭 형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 통일의 구체적 모멘텀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2006년으로 보았다. 그리고 2007년께는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 전망은 김정일 체제가 말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권력투쟁 궁중극을 연출하고 있는 북한 권부의 오늘 날 모습을 바로 말기증상으로 본다. 핵 위협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면서 곧 있을지 모를 북한체제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는 유럽측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문제는 통일의 마지막 방해요소인 북한 지도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다. 이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중국이 ‘김정일과 그 막료’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지나친 낙관론인지 모른다. 그러나 큰 그림으로 보면 한가지 놓칠 수 없는 포인트를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21세기의 국제정세, 더 좁히면 동북아 정세의 중추적 흐름이다. 그건 다름 아닌 민주화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동북아를 휩쓴 민족주의간의 충돌 양상도 달리 보인다.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나…. 이런 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폭정의 전초기지이자 핵 위협을 일삼는 김정일 체제는 동북아 평화의 적이다. 그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이에 위협을 느껴 미국과 일본을 공통의 적으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일각에서 일고 있는 움직임이다. 이 동시 발생적 움직임은 충돌코스를 향해 간다. 마침 불어온 ‘민족주의’란 바람을 타고. 한국에서 일으킨 이 바람이 중원으로 몰아쳤다. 풍속이 거세지면서 그러나 뭔가 심상치 않은 게 감지된다. 민주화 요구다. 결국 서둘러 갈등을 봉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누가 한 말이던가. 그 말이 불쑥 떠올려진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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