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희망을 가꾼다
나눔의 집서 새삶사는 박웅대씨
시각 장애 부부 한대연·영희씨
모두 똑같이 맞이하는 새해 새날이지만 어떤 이들은 더 기쁘고 더 감사하게 시작한다. 모두에게 똑같이 내리쬐는 태양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더 밝고 더 따스하게 느껴진다.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도 잃지 않는 희망, 그것이 무엇보다 큰 힘이고 자산인 사람들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삶의 바닥을 치고 올라온 박웅대씨, 서로 볼 수 없어도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잉꼬 시각장애 부부 한대연·영희씨가 그런 사람들. 2005년의 벽두를 더 밝게 비춰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잘나가던 사업 도박으로 탕진
마약에 빠져 홈리스로 바닥 인생
후배들 보며 회한 봉사 전념
새해엔 가정도 꾸리고 싶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박웅대씨.
“자,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어이 거기, 눈 좀 그만 떠라… 공기 좋잖아.”나눔 선교회 박웅대(57)씨는 오늘도 새벽길을 달린다. 더 이상 혼자 달리는 길이 아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어주는 나눔의 대식구가 항상 그의 곁에 있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를 때쯤이면 산꼭대기다.
아침마다 산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 시내를 내려다볼 때면, 박씨의 지난 50년 인생이 새벽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희망이 있으면 사람은 변한다는 진리를 믿게 되는 순간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50대 후반이네요. 지나온 삶을 되돌리긴 늦었다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꿈이 있어 좋습니다. 그 동안 세상에 빚을 너무 많이 졌거든요”
나눔 선교회에서 내무반장으로 일한 지 어느덧 3년.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진 것 하나 없어 선교회에 의지하고 살지만, 요즘처럼 살맛 나는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 변화해 가는 아이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같아서다.
사업가로, 도박꾼으로, 마약 매상으로, ‘잘 나갔던’ 왕년의 그를 돌이키면 현재 박씨가 하는 일은 비할 바가 못된다. 새벽에 일어나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아이들을 강제로 깨워 하이킹에 참여시키고, 자신도 그 대열에 끼어 한 사람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게 토닥거려 준다. 새벽 하이킹을 마치면 다음은 창고 관리. 이어 한창 건축 중인 3층 공사현장에 왔다갔다하거나 기부금 걷으러 다니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다. 모두가 허드렛일에 불과하지만, 박씨에겐 너무나 행복한 세상이다.
“오십 평생을 그늘에서 살았어요. 폭력배로 살다가 괌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을 왔죠. 운수업으로 돈 꽤나 벌고 나니 도박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 끝나면 비행기 타고 라스베가스로 날아가는 생활을 하루도 빠짐없이 2년쯤 했나봐요”
자신의 인생과 돈을 모조리 ‘올인’하고도 카지노를 배회하다가 결국 마약에 빠져들었다. 중독의 끝이 모두 그렇듯 마약 딜러의 길에 들어섰고, 타고난 사업 수완(?)을 발휘해 그럴싸한 규모의 마약상으로 이름도 날렸다. 당대 청년들이 꿈꾸던 영화 ‘스카페이스’(Scarface)의 알 파치노가 될 것만 같았다. 마약 소지죄로 카운티 형무소는 수없이 들락거렸고, 잠복 근무하던 경찰에 덜미가 잡혀 주형무소에서 4년을 살았으면서도 여전히 마약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박씨는 마약 중간책을 자청, 길바닥 생활을 시작했다.
홈리스로 전락한 박씨는 하루하루를 때우다가 딸처럼 여기던 10대 소녀를 따라 나눔에 들어왔다. 올데갈데없고 정신까지 혼미한 상태였기에 쉴 자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낯익은 청소년들이 눈에 띄었다. 자신에게 마약을 받아 팔던 아이들이었다. 순간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이 굵은 눈물줄기로 흘러내렸다.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다. 이후 박씨의 삶은 중독과 벌인 사투였다. 결국 2년만에 박씨는 해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앞으로의 삶을 살고 싶다는 박씨는 스스로에게 되새긴다.
‘여태껏 살아온 삶이 음지면 어떤가. 지금 내 마음속은 햇살 눈부신 양지이기만 한데’
맹아학교 선후배로 첫 만남
서로의 모습 본적 없지만
‘마음속 촛불’밝히며 평생반려
중도실명한 부부 시각장애인이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가는 한대연·영희씨가 인근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어찌나 밝은지 아무리 칙칙한 모임도 이 사람만 ‘떴다’하면 한밤중에 촛불 밝힌 듯 환해져요.”
한대연(52)씨는 부인 영희(46)씨를 ‘촛불 같은 여자’라고 소개한다.
“그거야 자기가 워낙 유머가 있어 그런 거지. 무뚝뚝해 보여도 얼마나 재밌다고요.” 얼른 남편의 공으로 돌리는 영희씨 얼굴이 소녀처럼 발그레해진다.
올해로 결혼 25주년을 맞는 시각장애인 부부 한대연·영희씨.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에겐 물론, 대연씨가 재학중인 월드미션 신학교와 교회, 단체 등 모임마다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하다.
전북 정읍서 7남매 중 건강한 장남으로 태어나, 비록 고도근시였지만 안경을 쓰면 그럭저럭 생활할 수 있었던 대연씨는 고 2때 시력교정 수술을 받은 것이 화근이 돼 시력을 잃었다.
또 부산 출신 5남매의 장녀인 영희씨도 정상이었던 시력을 ‘망막색소 변성’으로 차츰 잃어가다가 중학 때 실명하고 말았다.
“그러니 제가 계획된 만남이라고 하지요. 부산에 살던 영희가 중도실명하지 않았다면, 또 정읍에 살던 제가 수술에 성공했다면 우리가 평생 만날 일이 있었겠어요?”
둘은 중앙청 뒤 서울맹학교 선후배 지간이다. 6년이란 연령차 때문에 같은 시기에 함께 캠퍼스생활을 한 건 아니었으나 졸업 후 중도실명자들에게 점자와 침술을 가르치던 대연씨와 중학생이었던 영희씨가 만나게 된 건 결국 학연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나를 기쁘게 해주기보다 나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는 한대연씨는 영희씨와 처음 만나 악수하는 순간, “바로 이 여자란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고 전했다. 그리고 “1980년 결혼해 지금껏 살아보니 정말 그런 여자”라며 행복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래서 더욱 서로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다는 이들 부부의 넘쳐나는 감사와 자족의 삶이, 더 큰 걸 갖고,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누리겠다고 버둥대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결혼 2년 뒤 낳은 떡두꺼비같은 건강한 아들은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내 지금은 23세의 늠름한 대학원생으로 성장했다. 지난 2000년 대연씨의 한의학 유학차 LA에 와서야 10여 년만에 세 식구가 한 지붕아래 함께 살게 됐다.
동국 로얄한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자격시험에도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 2002년 정식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대연씨의 실력이 알려져 알음알음 찾아오는 환자들 가운데 이제는 단골환자도 꽤 된다.
“세 식구 생활과 2년째 재학중인 신학교 학비도 걱정 없이 채워 주시고, 볼 수는 없지만 좋은 배우자와 아들도 주시고, 또 건강도 허락하시니 더 바랄 것 없이 감사할 따름”이라는 이들 부부의 신년 소망은 무엇일까.
“우리에겐 우편물 점검이나 장보기처럼 사소한 일도 큰 장애지요. 틈틈이 신경 써 방문해 주시고 온갖 것을 챙기시는 주변 분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은혼의 을유년을 맞는 한씨 부부. 벽에 거울 한 장, 그림 한 장 걸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닮아 군더더기 없이 소박한 그 신년 바람이 햇빛을 쪼이며 따사롭게 이루어지는 희망찬 2005년을 함께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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