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대망의 새 해가 다가오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묵은 때를 지우지 않고 과연 새로운 한 해를 부담 없이 맞이할 수 있을까. 이 것이 사람마다의 고민이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햇을 때 새로운 것도 들어올 자리가 있고
채워질 공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말이 되면 무언가 잘못된 것을 개선하고 고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안될 때 안되더라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은 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새로운 해가 와도 발전이 없고 퇴보된 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누가 봐도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잘못된 관행을 이민족이 사는
미국에 와서 까지 고치지 못하고 버젓이 하고 있다. 이러고도 우리가 1등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비근한 예로 요즘 연말이 되서 각 단체별로 갖는 송년회나 연말모임을 가보면 왜 그런지 짜증이 나게 한다. 이유는 많이들 느끼는 것들로 행사가 늦게 시작되는 것은 고사하고 반시간, 한 시간 이상씩 시작된 행사에서 마저 염증을 느낄 정도로 한심한 광경을 보게 된
다.
참석자들이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회장, 부회장, 준비위원장, 심지어 고문까지 웬 축사와 인사말이 그리도 많은지. 등재된 인사들의 연단연설을 듣고 나면 정작 본 프로그램 때는 벌써 흥미를 잃어버려 사람들이 밥만 먹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참석자들의 의견은 한결같이 그런 꼴이 짜증나 다음 번엔 다시 안 온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말하자면 저희들 잔치에 무엇 때문에 시간 내고 돈 없애고 가느냐는 게 이들의 불평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현실이 잘 개선이 안 된다는 것이다.
돈 낸 인사들이 그래도 연단에 한번 씩 올라가 자신의 직책과 얼굴이 소개되고 하다못해 말이라도 한마디씩 해야 그나마 참석하고 일도 하고 또 그래야만 돈을 내 회가 운영되기 때문이란다. 한인사회에 있는 400여 단체들의 행사에 그 많은 ‘장’급의 인사들이 나가서 한마디씩 한
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그 시간이 많이 낭비되며 불필요한 일들로 생산적이지 못한가.
우리는 예전부터 관료직을 좋아했다. 이장, 면장, 군수, 도지사로부터 단체의 회장, 부회장, 이사장, 부이사장 등에 이르기까지 이런 직함을 갖게 되면 자연히 권위를 갖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런 유물로 인해 우리는 지금도 아직까지 이런 관직을 선호하고 그런 직을 가진 사람을 꽤 괜찮은 인사
로 대우한다. 때문에 그런 직함을 안주면 돈도 안내고 참여도 않는다는 것이다.
동창회다, 무슨 단체다 하는 곳에 가보면 모든 분위기가 회장단 중심이 되고 모처럼 시간 내고 돈 내고 찾아와 자리 채워준 사람들은 들러리가 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다고 알맹이는 뒤로 가고 정작 드러날 필요가 없는 장 급들만 행세하고 참석자들은 들러리로 전락한다. 이것이 바로 허례요, 허식의 일종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다 보니 자연 장 자 붙은 사람들과 겉치레 잘 돼 있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 아첨하는 풍조가 기승을 부리게 마련이다.
물론 한국은 이제 국제적으로 옛날의 한국이 아니고 급 성장한 국가가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교만한 태도와 겸손하지 못한 자세, 감투가 없고 옷이 화려하지 못한 사람들을 유난히 경시하는 풍조는 아직도 여전하다. 또 좀 직위가 있고 돈이 있고 옷 잘 입는 사람들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그들을 크게 대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모
범이 돼야 할 단체나 교계가 더 심하다.
우리처럼 외모에 비중을 두고 신경을 많이 쓰는 민족이 또 있을까. 그 것 때문에 한인들은 주로 허세를 위주로 명품을 선호하고 감투도 일부분 보면 허세 위주가 주를 이룬다. 브랜드 상표를 입어야만 돈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또 무슨 직함을 가진 사람만이 대단한 사람처
럼 행세한다. 언제까지 이런 악습이 계속돼야 하는가. 제발 이번 연말로 쓸데없는 허세는 좀 버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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