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억은 캐롤로 남아 있다. 눈꺼풀이 무겁다. 자정을 넘겨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아닌가. 통행금지도 없고. 성탄을 알리는 등불이 대문에 걸려 주변을 환히 밝히고 있다.
‘고요한 밤…’ 마침내 찬양 소리가 들린다. 밤 공기가 매섭도록 차다. 손에, 손에 등을 켜들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찬양대원들. 추위도 아랑곳없다. 기쁨이 넘쳐서인가. 뭔가 형언 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크리스마스구나.
어릴 때의 추억이다. 때문인지 크리스마스는 항상 캐롤과 함께 회상 된다.
아기예수 탄생을 찬양하며 대문을 일일이 노크하던 찬양대. 그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는 크리스마스 전통을 아쉬워하며 한 미국 신문의 칼럼니스트가 던진 질문이다.
그 역시 12월 한 겨울밤의 추위마저 녹이던 찬양대들의 캐롤을 그리워하고 있다. 왜 그들은 모습을 감추게 됐을까. 샤핑에 너무 바빠서인가. 노크 소리에 문을 연다는 것 자체가 너무 겁나는 세상이 되어서인가. 자문에 자답이다. 그러나 잊혀져가고 있는 크리스마스 전통에 대한 짙은 향수 같은 게 묻어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전쟁’이라고 했나. 그 전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나오는 소리다. 그뿐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안 된다. 크리스마스 파티란 말도 그렇다. 메리 크리스마스란 인사도 공공장소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10여년 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정·교(政敎)분리 원칙에 따라 소송이 해마다 꼬리를 문 결과다. 이 전쟁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크리스마스 전통을 완전히 무너뜨릴 기세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학교들이 전전긍긍이다. 까딱하다가는 소송을 당할까 두려워서다. 캐롤은 물론이다. 모든 교내 행사에서 기독교 색채는 완전 배제되어야 한다. LA 학교들이 처한 상황이다. 뉴저지의, 또 플로리다의 학교도 마찬가지다.
그 운동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매서추세츠의 소머빌. 그곳의 시장은 ‘크리스마스 파티’란 말을 사용했다가 공개사과를 했다. ‘할러데이 파티’라고 정정한 것. 백화점 점원들도 이제는 고객에게 ‘해피 할러데이’란 말을 사용해야 할 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란 인사는 비기독교 고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대인 명절인 하누카는 관계없다. 그러나 아기예수 탄생을 알리는 상징물 설치는 어떤 공공장소에서든 허용되지 않는다. 왜. 하누카는 종교와 관계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인의 80% 이상이 기독교도다. 95% 이상이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지키고 있다. 이런 미국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고 있을까. 이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소수에 관대한 미국적 정신 때문이 아닐까.
말 그대로 80% 이상이 기독교도다. 이 다수는 소수의 입장을 항상 배려해 왔다. 문화적 측면에서 ‘소수계 보호조치’(Affirmative Action)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지나쳐 소수가 이제는 관대한 다수에게 종교와 관련해 침묵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전쟁은 그러면 어디까지 갈까. 반전의 기미가 보인다. “해도 너무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는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문학, 미술 등 서구의 모든 예술은 기독교가 그 근본 바탕이다. 미국 문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의 언어 습관, 사회적 관습, 심지어 매너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기독교가 스며들어 있다.
이 미국적 문화에서 기독교적 요소를 모두 도려낼 수 있을까. 말하자면 이런 꼴로, 이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다문화주의로 볼 수 없다. 반(反)문화주의라는 지적이다.
이런 인식과 함께 대대적 반격이 시작됐다. ‘메리 크리스마스’란 말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자는 기독교계의 캠페인이 그 일환이다.
그건 그렇고 ‘메리 크리스마스’란 말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들릴까. 기독교인의 경우는 물론 가슴으로 전해지는 인사다. 비기독교인의 경우는 그러면 어떨까. 결코 부정적이 아니다. 평화. 용서. 섬김. 나눔. 관대함. 그리고 기쁨 등의 단어와 연관되어진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크리스마스는 한 특정 종교의 절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종교, 인종, 문화를 초월한 명절이다. 전 인류의 축일인 것이다. 빛이 어두움에 갇힌 인간을 찾아온 그 날을 기리는 축제 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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