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연말이라는 시즌은 공연히 사람들의 마음을 세모 분위기에 젖게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달력 한 장,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롤, 모임이나 파티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 받는 일들이 세모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차가운 겨울날씨에 흰 눈이라도 내리면 세모 분위기는 한결 더해진다.
이런 연말이 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망년회이다. 무엇을 잊어버리자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저 지난 해를 잊어버리자는 이름일 것이다. 잊어버리기 위해 먹고 마시고 취해버리는 것일까. 망년회란 말에서 일제시대의 냄새가 난다고 하자 이제는 송년회란 이름의 행사가 많
아졌다. 그리고 연말이 번거롭게 되자 신년회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구정을 계기로 구정맞이 잔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세모 분위기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거리와 상가에 불빛이 요란하던 크리스마스 장식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 받던 크리스마스 카드나 새해 연하장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연말이면 빼놓을 수 없었던 파티
가 줄었고 참석하는 사람들도 줄었다.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마음이 메말라졌기 때문일까. 아마도 두 가지가 모두 원인일 수 있다.
사실 연말이라고 하지만 연말이 평소와 특별히 다를 건 없다.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는 지를 알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의 흐름일 뿐이다. 사람들이 이 시간의 흐름을 계산하기 위해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기준삼아 연월일을 만들었으니 어느 날이든 연말이 될 수가
있고 연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04년 12월 31일과 2005년 1월 1일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 지나서 세월이 흘러가기 때문에 한 가지 확실해지는 것은 있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는 점점 길어지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는 점점 짧아진다는 것이다.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됨으로써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 앞에 한 발자국씩 닥아섰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발표된 한국인의 2002년 평균 수명을 보면 남자 73세, 여자 80세이다. 남자는 37세를 살면 인생의 절반을 산 것이고 여자는 41세가 되면 절반을 산 것이다. 지금 세상을 주름 잡으면서 자신만만하게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20년 내지 30년만
지나면 죽을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인생이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지금 지구상에 있는 유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100년 후에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참으로 무상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인생에 대해 불교에서는 윤회를 이야기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국을 이야기 하지만 이 지상에서의 인생은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꿈같은 인생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고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살이가 아니겠는가. 이런 것들을 위해 남과 싸우고 남을 해치는 삶을 살았던 것이 우리들의 지난 한 해였다면 우리의 꿈같은 인생은 분명히 악몽인 셈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으로 좋은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새해에는 이루고 싶은 소원을 성취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풍요롭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장춘몽에 불과한 꿈속에서 누리는 모든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영광을 위해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편안한 꿈, 즐거운 꿈처럼 편안한 삶, 즐거운 삶이 우리의 인생에서는 더욱 값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연말이 되어 송년이라는 말로 한 해를 보내고 망년이란 말로 한 해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의미가 있는 말들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불편했고 고달펐던 삶이 있었다면 새해를 계기로 그런 삶은 보내버리고 잊어버려야 한다. 지난 날은 과거이며 과거란 죽어버린 시간들이다. 과거에 얽매어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시간까지 망치게 할 수는 없다.
이제는 떠들썩한 송년회나 망년회가 아니라 과거의 악몽을 보내버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내 마음속의 송년회와 망년회를 가져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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