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학교
지난 토요일 조금 색다른 점심식사에 초대받았다.
요리클래스를 수료한 학생들이 손님을 초대해 자신들이 배운 것을 발표하는 시간으로, 말하자면 미대생들의 졸업전시회나 음대생들의 졸업연주회와 비슷한 행사였다.
요리학교는 산타모니카의 AI 예술학교(The Art Institutes), 우리 부부를 초청한 사람은 이 학교에서 ‘아시안 쿠진’을 가르치고 있는 셰프 서미영(미셸 서)씨였다. 서미영씨는 올해초 우리 푸드 섹션에 커버로 소개했던 디저트 전문요리사인데, 지난봄 페이스트리 셰프로 일하던 ‘러미타지’ 호텔을 떠나 이번 학기부터 AI 예술학교 교수로 변신한 것이다.
서씨가 가르친 학생들은 이날 손님들에게 4코스 세트 메뉴를 서브했다. 먼저 타일랜드의 전통 수프인 ‘탐 얌 쿵’(Tom Yam Kung)이 나왔고, 이어 세가지 다른 양념으로 요리한 닭 꼬치구이와 캄보디아식 스프링 롤이 애피타이저로 나왔으며, 메인 요리는 아시안 퓨전 소스로 요리한 송아지 무릎고기 찜 ‘오소부코’(Ossobuco),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는 구운 배와 진저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소스를 뿌려낸 것이었다.
맛은 어땠냐고? 솔직히 점수를 매기면 B 마이너스 정도, 어쩔 수 없이 실험적이고 아마추어 냄새가 나는 맛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서양요리 권의 학생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아시안 퓨전음식이니 만큼 그만하면 잘했다고 칭찬해줄만 하였다.
이날 처음 방문해본 AI는 상당히 전문적이고 업스케일한 예술학교였다. 전공이 요리 외에도 그래픽 디자인, 미디어 아츠, 비디오 아츠, 게임 아츠 등 여러 분야가 있는데 미전국의 30여개 분교 중 산타모니카 학교는 97년 설립된 만큼 건물과 시설, 인테리어가 최고 수준이고 요리클래스는 부설 비스트로 식당까지 운영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요리학교는 나파 밸리에 있는 그레이스톤 CIA(Greyston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샌프란시스코의 요리 아카데미(California Culinary Academy), 그리고 ‘르 코르동 블루’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패사디나의 요리학교(California School of Culinary Arts)가 손꼽히는데, AI도 그에 못지 않은 요리학교임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요리학교를 한번 방문해보면 한국의 요리업계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뒤져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요리학교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듯 단순히 요리기술, 요리법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주방 조리기구 사용법, 식재료에 대한 이해, 식품위생과 안전, 영양, 요리시간과 타이밍,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게 되고, 이어 미국과 세계 각국의 요리는 물론이고 베이킹과 페이스트리, 디저트, 케이터링, 와인과 술, 아울러 날마다 변화하는 요리의 유행, 퓨전 요리에 대해서도 이론과 실습을 공부한다.
뿐만 아니라 요리 경영(culinary management) 코스에서는 호텔 및 레스토랑 주방과 요식업계의 현실을 배운다. 식당 운영 및 직원관리, 관련 법규, 이벤트 유치, 재료 구매, 메뉴짜기, 고객 서비스, 마케팅, 리더십, 심지어 어카운팅과 푸드 저널리즘에 이르기까지 공부함으로써 요리에 관한 한 철저한 프로페셔널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요리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하고 나온 사람들이 경영하는 식당과 ‘손맛’을 무기로 한인들이 대충 운영하는 식당이 같을 리가 없다. 한인타운의 식당들이 유난히 부침이 심한 이유, 툭하면 주방장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고, 식당이름이 바뀌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요리에 대한 전문지식과 애정, 그리고 요리를 예술로 여기는 장인정신이 없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아무나 식당을 차리기 때문에 음식이 아니라 돈을 따라서 왔다갔다, 사고 팔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에도 한인 인구가 150만명을 헤아린다고 하는데, 또한 한국음식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도 날로 높아져가고 있는데, 하루빨리 장인정신을 가진 요리사들이 많이 배출되어 미국 요리학교에서도 우리음식을 가르치고, 한식을 인터내셔널 오뜨 쿠진의 대열에 올려놓게될 날을 진심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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