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먹거리들
아담하고 고풍스런 분위기
맛좋은 포도주, 푸짐한 요리
취리히 번화가 초컬릿 상점. 스위스 초컬릿은 세계 최고다.
마켓서 녹인 치즈와 따뜻한 와인을 사먹는 취리히 시민들.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치즈와 초컬릿.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건 오만이었다. 국제 금융 도시 취리히, 은빛 설산 융프라우요흐, 고풍스런 루체른 모두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서일까, 기대를 훨씬 앞지르는 먹거리는 스위스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었다.
취리히의 도심 중앙에 위치한 Zunfthaus zur Zimmerleuten은 취리히의 장인 목수들의 길드홀이었던 곳을 개조한 레스토랑. 리마트 강을 내려다보며 고급스러우면서도 푸짐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장인들이 장식한 목판과 석판들이 아주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취리히 식 생선 수프, 민물 생선 부이야베스 등 해산물도 눈길을 끌었지만 취리히 식 송아지고기 요리를 주문해봤다. 웨이터가 테이블 바로 앞까지 와서 접시에 직접 덜어주는 이 요리는 버섯과 버터가 듬뿍 들어가 진한 풍미를 맛볼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 가장 맛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고기에 딸려오는 감자 요리들. 때론 으깨고 때론 튀기고 때론 오븐에 구워내는데 이게 같은 소재를 쓴 건지 의심이 갈 만큼 각기 다른 맛을 낸다. 공통된 것은 버터를 듬뿍 쓴다는 것. 유기농으로 키운 스위스 젖소의 우유로 만든 버터의 맛과 향은 아직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다.
한때 공업단지였던 취리히 웨스트는 현대적인 바와 레스토랑, 라운지들이 밀집해 저녁이면 세련된 젊은이로 들끓는 지역. 밖에서 보면 웨어하우스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 지역 바와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대단스레 꾸미지 않은 현대적 단순미로 요약할 수 있다.
연극 공연 극장과 재즈 바가 딸려있는 라 살르(La Salle)는 바 겸 레스토랑. 종업원들은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들을 커다란 테이블에 함께 앉히는데 그대로 따라 앉아 와인 잔도 기울이고 식사를 하다보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고 대화에도 끼어들게 된다.
이런 장소들이 인기 있는 것을 보며 아마도 요즘 대도시의 젊은이들은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느끼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라살르(LaSalle) 주소Schiffbaustrasse 4 8005-Zurich, 전화 01-258-7071.
스위스의 어떤 도시든 바에 가서 와인을 시키면 아주 흥미 있는 것을 체험한다. 와인 잔에 하얀 줄이 그려져 있는데 더도 덜도 말고 꼭 그만큼만 따라주는 것. 정밀하고 꼼꼼하게 시계를 만드는 사람들이라 와인도 그렇게 파는 것인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좀 야박하다는 느낌 역시 없지 않다.
다른 지역 역시 마찬가지지만 스위스의 와인들은 스위스 음식들과 참 잘 어울린다. 티치노는 스위스 내 이탈리어를 쓰는 지방. 이 지역의 와이너리, 델레아(Delea)에서는 카베르네이와 멀로를 블렌딩한 와인을 만들어내는데 맛이 기막히다. 지하에 마련된 와인 저장고에는 수백 개의 배럴들이 와인을 품에 안고 잠들어 있었다.
이탈리아 와이너리에서 건너왔다는 주인은 이제 발사믹 비니거도 생산을 시작했다 한다. Delea Winery 주소, 11 Via Zandone CH-6616 Losone, Ticino. 419-1791-0817.
로이커바이트에서는 옥외 온천욕을 즐기고 난 뒤 이 동네에서 가장 괜찮다는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양 빨강 테이블보가 동네 소박한 밥집 같은 곳인데 음식 맛이 상당하다. 돌판 구이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스위스에서 돌판 구이 스테이크를 보게될 줄이야. 테이블 앞에 와서까지 지글거리는 스테이크에는 머스터드 소스와 허브 버터 소스 등 다양한 소스 그릇들이 함께 줄줄이 나온다. 화이트 와인에 각종 치즈를 넣어 만든 퐁뒤는 한낮, 몽블랑 산기슭에서 곱아들었던 손을 확 풀어준다.
여러 사람이 한 솥에 꼬챙이를 넣었다 뺐다 하며 함께 즐기는 퐁뒤는 스키를 타고 난 뒤에 딱 어울리는 음식.
스위스 발레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은 바디가 마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여인처럼 박하다. 맛 역시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하지만 신토불이라고, 이 지역 고기 요리, 치즈 퐁뒤와의 궁합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곳곳엔 멋스런 레스토랑들
고급스런 지중해 요리 즐비
로이커바이트 산 정상의 카페,
우아한 분위기의 루체른 호텔 쉬프 레스토랑.
웨이터가 직접 덜어주는 취리히 식 송아지 요리
루체른의 호텔 쉬프 레스토랑의 양고기 요리.
감자·햄에 녹인 치즈, 계란 프라이를 얹은 산간 지역 전통 요리.
글린델발트의 한식당 한강.
빨간색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로이커바이트 산 정상에는 유리로 안이 훤히 들여다 비치는 카페가 있다.
이런 시설 안의 음식이, 그것도 주문에 따라 조리하는 게 아니라 다 준비된 것(Hot Buffet)이 뭐 대단한 게 있을까 싶었는데, 맛이 기대 이상이다. 특히 양고기 구이는 페스토 버터와 함께 먹는 맛이 삼삼했다.
루가노와 영화제로 유명한 로까르노 지역에는 이탈리아 본토만큼 쫄깃한 알 덴떼 파스타를 즐길 수 있는 리스또란떼와 트라또리아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한 겨울이라도 젤라또를 후식으로 먹는 이들도 많고 에스프레소 역시 최고 수준.
아스꼬나(Ascona)의 이든록(Eden Roc)은 같은 5 스타급 호텔과 비교해도 월등히 뛰어난 장소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예술 혼이 배어있는 세련된 인테리어는 물론, 라고 마조레를 한 눈에 들여놓을 수 있는 호텔 레스토랑 역시 세상 어느 곳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고급 레스토랑들의 레퍼터리인 지중해 연안 요리를 선보이지만 이곳의 음식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트러플, 카비에르 같은 진귀하고 값비싼 재료들을 넉넉하게 쓰기 때문. 오렌지를 곁들인 프와그라 무스, 트러플 거위 구이 파스타, 소테한 프와그라를 얹은 양고기, 이 정도 메뉴만 봐도 이곳의 음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매트르디가 직접 만들어준 크레페 수제뜨를 먹으며 그래, 여자들은 아주 가끔씩 이런 호사를 해야지, 생각한다.
어느 계절에 가든 이든록 호텔에서의 밤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CH-6612 Ascona 전화 091-785-7110. www.edenroc.ch.
융프라우요흐 등정을 위해 머문 아담한 도시 글린델발트. 여행길에 오른 지 10여 일만에 처음으로 한식당, 한강을 발견했을 때는 무조건, 반사적으로, 절박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단아한 외모의 주인은 10여 일간 곡기와 김치를 취하지 못해 초췌해진 여행자를 반갑게 맞으며 잡채, 파전, 갈비, 매운탕을 줄줄이 내놓았다. 이국에서 맛보는 제대로 된 한식에 감동해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마냥 입에 떠 넣다 보니 배가 빵빵. 다음날 아침 온 몸에서 폴폴 풍겨져 나오는 마늘 냄새를 맡으며 우리들끼리 무뎌진 이 냄새가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마치 한국 민속 박물관을 찾은 것 같은 인테리어의 ‘한강’에서의 한 끼 식사는 융프라우요흐를 오를만한 힘을 우리 육체에 창조해 줄 것이다. Han River Tuftli 33818 Grindelwald. 033-853-0733.
글린델발트에 있는 아이거 호텔의 레스토랑도 기억에 남는다. 샌타모니카에서도 살았다는 주인은 LA에서부터 온 여행자를 마치 고향 친구 대한 것처럼 반가워했다. 감자와 베이컨 위에 치즈를 얹어 녹인 후 계란 프라이 2개를 덮어 묵직한 느낌의 프라이팬에 내오는 스위스 산간 지역의 음식은 수더분하기가 강원도 지방의 감자전 이상. 별 양념 더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한낮에 스키와 하이킹으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는 전 세계의 여행자들은 벽난로 앞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금방 십년지기가 되기도 한다. Hotel-Restaurant Eiger /Suisse Chalet /Memory 주소, 3818 Grindelwald. 033-854-3131.
여름이면 음악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 관광 도시 루체른에는 그 국제적 명성만큼 전 세계 다양한 음식을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다. 현대적 감각의 스위스 요리를 선보이는 쉬프 레스토랑(Hotel Schiff Restaurant)에서 맛본 허브 버터 양고기는 야들야들한 육질과 향긋한 버터의 조화가 절묘하다. Hotel Schiff CH-6354 Vitznau. 041-397-1357. 루체른에서는 중국, 일본, 베트남, 한국식 등 전 세계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스위스를 여행하다 보면 프랑스와는 또 다른 바게트 모양의 검은 빵을 자주 대하게 된다. 셰글(Pain de Seigle)이라 불리는 이 빵은 스위스 빵의 한 종류로 보리 가루가 40% 섞여 산미와 독특한 풍미가 있다.
처음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스위스를 떠날 무렵, 어느새 그 맛에 길들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글·사진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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