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났나. 그래도 여전히 분은 풀린 것 같지 않다.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수퍼파워다. 초일류 국가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선거결과가 나오다니.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는다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제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성조기의 별이 십자가로 바뀌었다. 기독교 우파의 표로 부시가 승리한 선거결과를 풍자한 만화다. 만화뿐이 아니다. 정치 논평마다 ‘이럴 수가…’ 하는 분함 같은 게 스며 있다.
종교적 열병에 들뜬 아메리카. 종교의 영향권 아래 놓여진 정치. 종교와 정치가 믹스된 체제. 이런 아메리카는 혹시 암흑시대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드러내놓고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쏟아지고 있는 진보성향의 정치 논평의 행간 행간에 깔린 게 바로 이런 우려다.
이들에게, 말하자면 반 부시 진보세력으로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그런데 더 분통 터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기독교 우파의 득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전망이 나와서다. 두 개의 미국, 그 중에서 ‘레드 아메리카’로 불리는 미국이 항구적 다수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거다.
오귀스트 꽁트가 말했나. 인구통계는 바로 운명이라고. 이야기는 뉴욕에서부터 시작된다. 미국의 심장인 뉴욕의 인구가 줄고 있다. 언제부터. ‘한 아이를 둔 가정’의 수도로 불리면서부터다. 뉴욕이 유럽을 닮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진보를 대변하는 ‘블루 아메리카’, 다시 말해 뉴욕 같은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반면 보수를 대변하는 레드 아메리카의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이 인구 통계상의 변화가 미국의 정치적 장래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장래의 아이들은 어디서 올까. 현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이다. 이 ‘현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미국판 버전이 기독교 우파, 혹은 복음주의 기독교도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필립 롱먼이 ‘텅 빈 요람’이란 저서를 통해 지적한 포인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종교적 백그라운드를 가진 미국인들이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자녀를 두는 경향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매주일 교회를 나가는 미국인 중 47%는 3명 이상의 자녀를 두기 원한다. 반면 비종교적인 미국인 중 보다 많은 자녀를 원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런 비율이 나올까. 진보문화의 전위는 동성애다. 이 진보의 반(反)이상향에서 어린아이는 그 존재가 희미하다. 자녀를 낳지 않거나 가급적 적게 둔다. 당연한 진보 지향의 흐름이다.
복음주의 기독교도로 불리는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44%다. 2000년 센서스를 기준으로 할 때 그 인구는 1억2,500여만이다. 이들이 평균 3명의 자녀를, 비종교적 배경의 미국인들은 평균 1.6명의 자녀를 둔다고 보면 그 인구분포도는 어떻게 변할까.
기독교 우파 백그라운드의 인구는 61%를 차지하게 된다. 절대 다수다. 그런데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이 계산에는 가톨릭 인구는 들어 있지 않아 하는 말이다.
스스로를 크리스찬으로 밝히는 미국인은 85%에 이른다. 53%는 신앙을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본다. 이런 저런 통계 수치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바로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앞으로 그 비율이 더 높아진다. 그게 흐름이라는 것이다.
현대화(modernization)는 세속화(secularization)를 불러온다. 전통적 사회학자들의 주장이고, 이 명제는 유럽에서 입증됐다. 미국에서는 진실이 아니다. 경제, 기술 등 분야에서 미국은 초 현대국가다. 그러나 가장 종교적인 국가다. 왜.
교회가 권력을 잃자, 영향력이 커졌다. 한 세기도 훨씬 전 신생 아메리카를 찾았던 토크빌이 한 말이다. 정치와 종교가 철저히 분리된 결과 교회의 영향력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일종의 종교적 시장경제 논리다. 철저한 자유가 주어졌다. 정부의 간섭도, 지원도 없다. 그러자 교회는 스스로의 생명력을 키우면서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넓혀가게 됐다. 이 미국적 예외성을 유럽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선 결과에 분노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왜 복음주의인가. 복음의 중심 메시지는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 자신이다. 신적 존재이자 인간인 예수다. 이 예수가 선포될 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다. 복음주의 신학자의 말이다.
그 말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해그룹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그런데 이해그룹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려 든다. 진보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 더 그렇다. 믿음을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요약하면 복음주의에 대한 오해가 2004년 대선 결과에 대한 잘못된 우려로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맞는 말인가.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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