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동맹관계는 한국의 경제발전, 정치변화와 더불어 많은 기복을 겪어왔다.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으며, 가장 영속적인 것은 국가이익밖에 없다고 한 명언이 지금처럼 뼈저리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지난 5-6년간 한미 관계는 정중하고, 때로 다정했던 관계를 떠나, 불쾌감과 불신, 불안정의 관계로 변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동맹관계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해 한국의 텔레비전은 시청 앞 촛불시위의 강렬한 이미지와 주한미군의 지뢰제거전차에 깔린 여중생들 사망사건을 연속 보도했다. 그러나 그 어느 방송사도 주한미군이 주머니를 털어 기부금을 모았다는 사실은 묵살했다. 나도 그 사실을 지난 9월 미국, 한국, UN군 특전단들과 서울에서 회의를 하는 도중 처음으로 알았다.
기부금 액수도 적지 않았다. 사병과 장교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동참한 모금이었다. 한국인 부인을 가진 한 장교의 말에 의하면 기부금 통이 부대를 돌아다니는 동안 많은 병사들과 장교들이 울었다. 그들도 여중생 딸을 둔 아버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촛불 시위, 반미 데모가 열릴 적마다 미군들은 부대 내에서 죄책감과 불안감에 떨어야했고, 심리상담이 늘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ABC의 나잇라인 제작진이 서울, 의정부, 동두천 등지를 방문, 반미감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북한보다 미국을 더 큰 위협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전미국에 방영된 이 한국 특집은 한국이 인도차이나의 꽁무니에 붙어있는 국가정도로 알고있는 교육받지 못한 시민부터, 한국아동을 입양해서 사랑을 퍼붓는 의학박사가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미국인들을 경악시킨 소리였다. 그럼 왜 미국군인들이 그곳에 주둔하고 있지를 묻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전세계 미군 주둔과 미군기지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에 속도를 가하고있다. 재검토는 사실 이전부터 추진 중이었으나, 9.11 이후 속도와 향방이 달라지고 있다. 주한미군축소는 이 재검토와 변화의 일환이다.
재선된 부시 대통령은 동양국가들 중에서 일본 위주로 대 테러 전쟁과 지역분쟁관리의 긴밀한 동맹관계를 추진하는 대신, 한국의 극단적 이념대립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전략개념이 없는 정치지도자들과는 냉정한 관계를 계속할 듯 보인다. 중국과도 정기적 대화와 여러 경로를 통한 공식, 비공식 동반자 관계를 모색할 것 같다. 한국은 건너뛰어도 좋은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나 연구자들이 “당신 네 미국사람들, 북한 핵무기 본 적 있어? 우라늄 농축도 무슨 꿍꿍이속으로 만들어낸 가짜 정보 아니야?” 하는 식의 말들을 던질 때마다 많은 미국 정책입안자들과 연구자들, 저명인사들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든다. 그리고 아무래도 한국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진심으로 걱정을 한다.
내가 속한 미국외교협의회가 지난 1997년 발족시킨 코리아 태스크 포스는 최근 회원들의 참여가 많이 줄었다. 진지하게 한반도 문제를 논의 해보았자 당사국인 한국이 국가와 지역 안보, 핵 확산방지에 대한 궁극적 의지를 보여 주지 않는데, 왜 우리끼리 머리를 썩혀야하느냐는 생각이 든 탓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지도자들이 “핵 문제는 미국의 문제, 또는 미국이 만들어낸 문제, 궁극적으로 미국이 해결해야될 문제일 뿐, 우리는 일없다”는 반응을 보인 결과이다. 게다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위협이라고 하는데 뭐라 반응을 보일 힘도 열정도 없어진 것이다.
미국대통령과 안보보좌관들이 어느 날 “한국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지! 북한과 교역하고, 도와주겠다는 데 할 말 없지. 그러나 북한이 핵물질, 기술, 관련 자료, 심지어 핵무기를 북한 밖으로 내보내는 순간, 그건 우리 국민의 생명보호를 위해 가만 둘 수 없지”하고 나올 수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굶주린 아이들과 여자들이 중국변방에서 죽을 고생하고, 다시 북으로 송환되는 걸 막기 위한 국제인권운동과 범세계적 탈북자 돕기 대책을 만들고 싶다. 한국이 반대하면, 동맹이고 뭐고, 관계가 깨지더라도 밀고 나가야한다”는 식으로 밀어 부칠 가능성이 전연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케리 상원의원을 전폭 지지한 뉴욕타임스, 그리고 워싱턴 포스트는 대선 결과가 나온 즉시 부시의 향후 정책방향에 대한 진지한 제언을 사설로 실었다. 참담한 패배의 민주당원들, 분열된 국민들과 부시에게 미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한국은 아직도 2년여의 대통령임기가 남았다. 한 국가의 국가이익을 망치고, 성공시키는데 2년은 긴 세월이다. 정신차리고, 국가지도자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될 일을 이 순간 시작해야된다. 웬 까닭인지,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 지금 더 걱정되는 국가는 미국이 아니라, 내가 자라난 한국이다.
오 공단
미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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