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사우나를 간다. 어쩌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라치면 왠지 쑥스럽고, 모르는 척할 수 있다면 가능한 모르는 척하고 은근슬쩍 피하고 싶다. 마음 한구석에서 ‘아니, 그렇게 바쁘다면서, 어떻게 사우나에 와서 저러고 있나?’라는 핀잔과 욕먹는 것도 걸쩍지근하지만-이유인즉, 내가 목사가 아니었을 때 목사님이 사우나 와서 앉아 있는 거 보면, 되게 눈에 거슬렸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나의 아름다운 벗은 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솔직히 아직까지 남자로서 폼잡고 싶은 객기가 남아있기에… 이하 생략… 왜냐면, 더 이상 표현하면, 성인물로 심의에 걸릴 것 같다.
사우나에선 모두들 안 그런 척해도, 알게 모르게 서로 안보는 듯 힐끔힐끔 ‘큰가, 작은가? 실한가, 잘할까?’ 뭐 이런 것들을 신경 쓰곤 한다. ‘안 그런 남자도 있나? 나만 그런가?’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성적인 것에 무지하게 민감하다. 왜,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고들 하지 않던가? 나도 남자누드가 아니라, 여자누드에 약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남자들끼리는 뭐 이러한 부분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통하는 것이 있다.
선교회를 어머니와 어제 막 16세가 된 아들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붕어빵처럼 부어 올라 있었고, 입을 꽉 다문 아들녀석은 머리끝까지 심통이 올라 있었다. “목사님, 우리 아들녀석이…, 세상에 이것 좀 보셔요. 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는 절대로 약을 안 한다며, 딱 잡아떼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하며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작은 알약들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신종 마약인가?’하며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도저히 모르겠으니… ‘아무래도, 나도 이제는 한물 갔나보다. 세대 차이인가? 이렇게 생긴 약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도통 들은 적이 없는데’ 그래도 마약하면 자칭·타칭 전문가인데, 무조건 모른다고 하자니 자존심 문제고, 어머니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아들 녀석에게 말을 시키려는데. 이 녀석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봐도, 약하는 녀석이 아닌 것이다. ‘참,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벌써 이 세계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었나?’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잠시 아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며, 자리를 피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녀석에게 캐묻기 시작했다. “빨리, 말해봐. 야~ 남자 대 남자로서, 분명히 한 것은 했다고 해야지. 다 알고 있으니까 말해. 네 입으로 듣고 싶다”며 여러 가지 공갈협박을 해댔다. “저는 아니에요. 저 아직 여자 몰라요”
녀석이 입을 여는 순간 난 웃느라, 눈물에, 콧물에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사실, 그 약은 바이애그라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부실함(?)에 깊이 고민하다가, 자존심이 있어서 아내에게 고백은 못하고, 바이애그라를 복용한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아내가 이 약을 발견한 것이다.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창피함이 앞서 애꿎은 아들녀석을 갖다 붙인 것이 화근이 되었다.
“어, 난 몰라. 아마 아들녀석 것인가 봐.” 얼렁뚱땅 넘어가 놓고는 아들에게 살짝 고백하며, 엄마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기로 남자 대 남자로 굳게 약속하고는 아들 녀석이 그 약의 주인으로 뒤집어 쓴 것이었다. 엄마가 약의 용도에 대한 궁금증으로, ‘혹시 마약 아닌가’하는 의구심으로 아들을 닥달하게 되었고, 아들은 아버지와의 굳게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신경질을 내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몇날 며칠을 씨름하다가 결국 선교회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눈물겨운 효심이 아닐 수 없었다. 참, 녀석이 멋있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겨우 16세 그래도 남자구나. 남자를 이해하는 진짜 남자!
가끔 여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머머’하며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때로는 남자의 원초적 모습을 귀엽게 보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마 아버지를 지키려는 이 아들녀석은 비교적 무난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아버지와 깊은 감정의 교류를 했고, 이해를 했으며, 이를 소화했다는 것은 부자간의 커다란 공감대가 지렛대처럼 자리잡아서 결코 다른 길로 빠질 수 없을 테니.
한영호 목사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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