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미국의 선거가 몇일 남지 않았는데도 대선의 판세는 오리무중이다. 미국 대선은 대체로 여론조사결과를 반영하며 이맘 때쯤이면 어느 후보가 우세한지가 드러나는데 이번 선거는 그렇지 않다. 선거 일주일 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의 부시대통령과 민주당의 케리 후보가 막상막하이다.
어떤 조사에서는 부시 후보가 51 대 46, 48 대 45로 우세하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케리후보가 49 대 48로 앞서고 있다. 또 두 후보가 48 대 48로 똑같은 지지율을 보인 조사도 나왔다.
두 후보의 대의원 확보 상태도 비슷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대통령 당선권인 대의원 수는 270명인데 부시 후보는 227명, 케리 후보는 225명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후보의 차이가 근소한데다 아직도 미정 상태인 대의원의 수가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느 후보의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아직 표심이 확정되지 않은 이른바 접전주에서 선
거전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접전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은 대형 주인 펜실베니아,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 3개 주다. 그 중에서도 관심의 대상은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이다. 플로리다는 4년 전 대선 때 법정분규의 대상이 된 곳인데 이번에도 소송에 휘말릴 우려가 크다.
이미 민주당은 10여건의 소송을 제기해 놓았고 양당은 변호사 수 백명씩 선거구에 배치하여 선거 후 소송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오하이오에서는 공화당이 3만5,000명의 유권자 명단에 이의를 제기하여 선거 전에 불법 여부를 가려야 하는데 이 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거 후유증에 휩쓸릴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이처럼 예측 불허의 선거전이기 때문에 선거 후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여 미국의 국론이 양분될 것을 걱정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 대선은 대체로 이렇게 심한 대립 현상을 보이지만 일단 선거가 끝나면 정상 분위기로 되돌아가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1828년의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과 앤드류 잭슨 후보의 선거전이다.
미국의 초대 워싱턴 대통령부터 6대 애덤스 대통령까지는 건국 당시의 미국인 동부와 남부가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했는데 오하이오 강변의 서부 이주민을 대표한 잭슨이 후보로 나서면서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과열선거가 되었다. 그러나 잭슨대통령이 당선된 후 미국은 정상을 되찾았던 것이다.
가장 후유증이 심했던 선거는 1860년의 선거였다. 노예제도를 이슈로 이 제도에 반대하는 신생 공화당은 링컨을 후보로 내세웠고 민주당은 노예제도의 유지를 주장하는 남부와 노예제도를 각 주의 주민 의사에 맡기자는 북부가 분열하여 각각 후보를 따로 내세웠다. 또 노예제도에 대한 찬반을 떠나 미국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입헌통일당도 후보를 냈다.
이 선거에서 링컨이 당선되자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남부의 6개주가 연방을 탈퇴하여 남부연합을 결성했다. 그리하여 미국은 남북전쟁을 겪게 되었다.그런데 이번 대선은 예측 불허의 치열한 선거이면서도 1828년이나 1860년의 대선처럼 정책 대립이 심각한 선거가 아니다.
지금 양당의 선거쟁점 중에 낙태와 동성애 문제, 총기규제 등에 대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현안인 테러전과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11 테러 이후 테러전은 미국이 당면한 중심과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부시나 케리는 모두 선제공격을 골자로 한 테러전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부시의 미국중심주의와 케리의 국제주의가 차이점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또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미국의 불경기 회복문제에 대해서 어느 후보도 근본적인 치유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는 기존의 감세정책을 홍보하고 있고 케리는 부시 정책을 비난하는 것이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은 정책의 대안이 없는 치열한 선거라고 할 수 있다. 부시대통령을 무조건 좋아하는 사람들과 부시 이외에는 누구도 좋다는 사람들이 열을 올리는 선거전이 되고 있다.
공화당이 집권하게 되면 소수의 부유층과 사업가들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또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극빈자나 웰페어를 받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일반 중산층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좋으니 법정소송 등 선거 후유증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더 주름살이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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