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다르고 우리와 그들이 다르기에 세상이 세상답다고 한다. 생김새나 몸집은 제쳐두고 세상 사람들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상상해 보라. 오로지 한 종류의 복제인간들이 들끓는 세상, 그건 이미 인간세상이 아니다.
이 점에서만 본다면 ‘다름’은 ‘같음’보다 소중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나와 혹은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 존재한다는 건 증오나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절하고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내려는 의지와 지혜만 갖추고 있다면 말이다.
‘북한인권법’을 둘러싸고도 전혀 다른 견해들이 분출하고 있다. 물론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북한인권법안보다 훨씬 강력한 내용을 담은 ‘북한자유법안’이 연방의회에 상정됐을 때부터 찬반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한결 같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계기로 김정일 독재정권이 주민에 대한 가혹한 인권 탄압을 더 이상 노골적으로 진행할 수 없게 하는 강력한 방지장치를 갖게 되었다”며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해온 전세계 인권단체와 민주화운동 세력의 활동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반색한다.
반대론자들 입장 또한 요지부동이다. 이들은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고립·봉쇄정책보다 포용정책이 효과적이며 탈북자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탈북을 예방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요 “북한 내부에서는 탈북자들에 대한 강경한 조치와 주민들에 대한 통제가 더욱 강화될 것은 물론이고 개혁개방 조치들을 유보시키게 하는 등 오히려 인권개선에 반하는 상황을 낳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이다.
한인사회의 여론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평화연대 등 젊은 코리안들을 중심으로 인권법 저지투쟁이 벌어졌는가 하면 교계 지도자 등 원로 코리안들은 대체로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또 지난달 마지막 주말 이틀동안 LA서 열린 ‘KCC 전국대회·통곡기도회’에서는 이 법안의 관철을 위해 말 그대로 통곡기도가 밤을 지폈고, 최근 오클랜드서 열린 ‘재미한인 공개포럼: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담‘에서는 이 법안의 폐해를 질타하는 외침이 대담장을 가득 메웠다.
앞서 말한 대로 같은 사안을 놓고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깡그리 부정하려는 경직된 사고방식이다. 저쪽은 이쪽을 “빨갱이”라고 이쪽은 저쪽을 “꼴통보수”라고 닦아세우기 일쑤다.
그것까지도 좋다. 더욱 큰 문제는 양쪽이 낯을 붉히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쯤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기회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의 입장을 아는 이상, 상대방이 한 뼘도 양보하지 않으리란 것을 아는 이상, 만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론이 반드시 무슨 합의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양쪽이 “방식은 다르지만 고민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 해도 토론의 성과는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평통의 침묵이 아쉽다. 한반도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나름대로 방향타를 제시하지는 못할망정 한인사회가 그토록 양분되는 것을 보면서도 서로의 생각을 견줘보고 마름질할 토론의 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좀 심하다.
법이 제정된 마당에 때를 놓쳤다고 지레 꼬리를 내릴 일이 아니다. 이 법이 근본취지에 맞게 기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지금부터다. 그보다 앞서 도대체 북한인권법이 뭐 길래 그 야단인지 알려줄 책무 또한 다른 어느 단체보다 평통에 있다고 본다. 다른 지역 평통은 가만 있는데 왜 우리만 중뿔나게 나서야 하느냐고 낯을 찌푸릴 일도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한국에서 전해오는 짜증뉴스 분열뉴스를 대할 때 혀를 끌끌 차며 핏대를 올릴 자격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평통은 바로 이런 사안에 대해 이해를 돕고 중지를 모아 한인사회의 막가는 분열을 막고 화합에 밑거름이 되라고 있는 단체 아닌가.
정태수
샌프란시스코지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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