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노의 저주’는 과연 풀린 것일까.
보스턴 레드삭스가 극적으로 뉴욕 양키스를 누르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자 85년간 보스턴을 짓눌러 왔던 ‘밤비노의 저주’가 마침내 풀린 것인가를 놓고 해석들이 구구하다. 베이브 루스가 레드삭스에서 양키스로 트레이드 된 후 보스턴의 악몽이 시작됐으니 이번 시리즈 승리로 저주가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보스턴과 뉴욕 메츠가 맞붙었던 지난 1986년도 월드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주의 시효만료에 대해 여전히 유보적이다. 월드 시리즈 5차전까지 먼저 3승을 거두고 있던 보스턴은 6차전에서 1루수 버크너의 뼈아픈 알까기 수비 실책으로 다 잡은 경기를 내주고 결국 7차전에서 패배해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밤비노가 또 다시 월드 시리즈에서 심술을 부릴지 모르니 월드시리즈 우승까지는 저주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여하튼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가 끝나고 이번 주말부터 월드시리즈가 시작된다. 올 플레이오프는 사상 가장 싱거운 시리즈가 될 뻔 하다가 가장 박진감 넘치는 시리즈로 탈바꿈했다. 레드삭스가 양키스에 내리 3번을 지고 4차전 9회말까지 뒤져 완전히 김빠진 맥주 같은 시리즈가 되는 듯 했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야구사를 다시 쓰게 한 명승부로 마감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도 호쾌한 타격으로 시종 흥미진진한 승부를 펼쳤다. 모두가 스포츠가 아니면 연출해 낼 수 있는 드라마들이다.
야구 애호가들은 ‘저주의 팀’ 보스턴과 시카고 컵스가 나란히 플레이오프에 나가고 플로리다 말린스가 월드챔피언에 올랐던 지난해 경기들보다 올해가 더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TV중계권을 갖고 있는 팍스는 이어지는 명승부에 표정관리가 힘들 정도이다.
이처럼 야구열기가 10월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불과 10년전 메이저리그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었다. 프로 풋볼과 농구에 밀려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서의 위상을 상실한데 이어 구단주들과 선수들간의 이기적인 다툼으로 1994년 급기야 월드시리즈가 취소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연방의회는 물론 클린턴대통령까지 나서 중재를 시도했으나 파국을 막지 못했다. 95년도 스프링 캠프는 대체선수들로 시작됐으며 지루한 협상 끝에 95년 4월26일 시즌이 재개됐다. 하지만 노사 양측의 탐욕에 넌더리를 느끼며 돌아선 팬들의 마음은 쉽게 되돌아 오지 않았다. 야구장은 텅텅 비었고 야구계의 위기감은 높아갔다.
위기의식은 통증과 같아 긍정적 기능을 한다. 팬들이 다시 야구장을 찾도록 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1996년 12월 구단주들과 선수노조는 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도입과 인터리그 경기 실시등이 포함된 새로운 협상안에 서명한다. “야구의 전통이 훼손된다”는 반대론도 있었지만(구단주들 가운데 이를 가장 반대했던 사람은 당시 레인저스 구단주였던 부시대통령이다) 두가지 아이디어의 도입은 결과적으로 메이저리그 회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즌 막바지까지 여러 팀들이 ‘박 터지는’ 경쟁을 벌이게 됨에 따라 종반 경기의 집중력과 긴장감, 그리고 흥미가 높아진 것이다.
올해의 경우 종전 플레이오프 시스템이 시행됐더라면 디비전 2위에 머무른 레드삭스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추운 날씨속에 쓸쓸한 오프 시즌을 보내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와일드카드 덕분에 레드삭스는 85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 기대에 부풀어 있다.
21세기 메이저리그의 장래가 꼭 장미빛 만은 아니다. 여전히 시장 불균형등 고질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90년대의 심각한 위기에서 빠져 나와 팬들의 사랑을 되찾아 가고 있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스포츠든,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와 자기혁신을 해 나가야 한다. 현재 NBA도 3점슛과 관련한 규정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와 팬들의 관심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가지 않는 스포츠는 결국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메이저리그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그렇고. 밤비노는 완전히 화를 푼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월드시리즈가 기다려진다.
조윤성<특집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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