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스코어는 ‘2:0’으로 굳어지는 게 아닐까. 첫 라운드는 명백한 케리의 승리다. 두 번째는 무승부. 그리고 세 번째인데, 결과는 역시 케리 승리로 낙착된다고 보아서다.
언변이 보통 유려한 게 아니다. 매너는 왕년의 케네디를 방불케 한다. 어딘가 흐릿한 인상을 주던 케리다. 그런 그가 TV토론에서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였다. 3차 TV토론은 그것도 경제, 건강, 소셜 시큐리티 등 국내문제에 치중된 토론이다. 그러므로 케리 승리로 미리 점친 것이다(이 글을 쓴 시점은 토론 전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라크 전쟁에 분노하고 있다. 알고 보니 대량살상무기가 없지 않은가. 종전 처리는 또 어떻고. 그렇게 엉망일 수가 있는가 말이다. 비난의 화살이 계속 쏟아진다. 이쯤 되면 더 볼 게 없지 않을까.
여론은 그런데 그게 아니다. 박빙의 대결이다. 혼미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다소나마 오히려 부시가 앞선다. 선거인단 확보 예상에서도 마찬가지다. 278 대 260. 부시의 우세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안보문제에 관한 한, 해외정책에 관한 한 부시에 대한 신뢰가 더 높다. 그리고 전시에는 현직이 유리한 법이다. 바로 이 점이 여론조사에 반영이 된 결과라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 설명이다.
부연하면 이렇다. 케리가 제시한 이라크전쟁, 테러전쟁의 해법은 한 마디로 국제주의다. 모든 것을 유엔, 또는 전통적 의미의 서방 동맹국과 함께 처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 국제주의란 게 그런데 그렇다.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패배주의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월남전 패배의 쇼크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르완다 사태, 수단의 인종청소, 이 잇단 대학살 상황에서 수수방관만 해온 게 국제사회다. 그리고 유엔이다. 이런 환경에서 테러전쟁을 국제주의의 입장에서 수행한다. 그 주장은 어불성설로, 미국적 가치에 대해 불신감을 스스로 내보이고 있는 오도된 정책이라는 것이다.
9.11 이후 안보상황은 달라졌다. 민주주의의 확산을 단순히 ‘순진한 미국적 이상’(理想)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현실의 안보라는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바로 전략’이란 말이다.
테러전쟁은 바로 민주주의 확산 정책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민주화, 이라크의 민주화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이 테러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때로 미국은 일방적 행동도 할 수 있다.
부시의 정책이다. 이라크 침공에 많은 미국인들은 불만을 보이면서도 부시의 테러전쟁을 지지하고 있는 이유다. 결국 해외정책에서의 높은 점수가 그 해답이 된다는 설명이다.
‘증오 피로증후군’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진단이다. 계속되는 정치적 악재에도 불구하고 부시 지지도가 계속 높은 이유는 이렇게 밖에 설명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3년반 동안 줄곧 두들겨 팼다. ‘부시-배싱’이다. 대통령이 될 수도, 또 되어서는 안될 인물이다. 백악관을 도둑 맞았다는 억울한 심정에서 부시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부시를 패러디한 액세서리가 끊임없이 개발됐다. 테입으로, 디스크로, 책으로, 인터넷으로 각양의 청문회를 통해 그 증오의 말들이 퍼져나갔다. 결정판이 ‘파렌하이트 9.11’다. 말이 기록영화이지 한마디로 반(反)부시 프로퍼갠더의 집약물이다.
‘부시는 사실에 있어 히틀러다. 9.11사태가 나기 전에 이미 그런 사태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로라 부시는 어떻고…’ 부시 증오그룹의 주장이다.
문제는 그 ‘히틀러 부시’가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나. 부시 때리기에 유권자들이 신물이 난 결과다. 증오 피로증세가 날로 심해지면서 여론의 반전을 불러왔다는 거다.
‘증오의 캠페인’으로 민주당 예선에서 선두를 달리던 하워드 딘이 어느 날 갑자기 몰락한 것도 달리 설명될 수 없다. 증오 피로증후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부시는 스타일에서 패배한다. 그러나 실체에서는 승리한다. TV토론에서는 지지만 선거에서는 이긴다.” 현실 정치에 몸담아온 한 노정객의 예상이다.
“내륙 지역의 중소도시를 가보아라. 외국인, 관광객은 좀처럼 보기 힘든 그런 곳 말이다. 그러면 미국이 보일 것이다.” 외국인에게 주는 충고다. ‘부시 승리’에 베팅을 해도 좋다는 말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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