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일(성은장로교회 장로)
가을은 일년에 한 번씩 맞이하는 결실의 계절이다. 각자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맺은 인생의 열매를 반추해 보는 시기이기도 하다.그렇다면 과연 나는 금년에 무엇을 심었고, 지금까지 무엇을 거두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떤 경우는 미국에 처음 올 때 빈 손으로 왔으니 빈 것 밖에 없다고 푸념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을, 우리는 꼭 어떠한 물질적 열매가 아니더라도 마음만은 부자이기를 희망한다.
결실을 맺는 삶이란, 사람이 사람으로서 삶의 도리를 하며 살았을 때 가능한 것이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잘났던 못났던 가을의 파른 하늘을 향해 감사할 수 있는 삶이라면 바로 살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꼭 학식이 높아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학문이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쓴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년 아버지 원수(元秀)와 유명한 사임당 신씨의 아들로 태어나 청주목사, 황해감사, 대사간, 대사헌, 호조판서, 우찬성,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당파싸움의 조정 역할과 임금으로 하여금 선정을 베풀도록 힘쓰면서 도의정치, 민본주의, 10만명의 군사를 길러 자주국방을 주장하였으며 정치, 경제, 철학, 사학, 교육에 관한 많은 책을 썼다. <격몽요결>은 그 책 중에 우리가 뜻을 세우고, 몸을 닦고, 어버이를 받들고, 남을 대접하는 방법 등을 쓴 것이다.
그는 자신도 이 책을 쓰면서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습관을 근심하여 스스로 깨우치며 반성하고자 한다고 하였다-그는 독서장(讀書章)에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항상 그 마음을 다짐하여 사물에 대한 욕망에 뜻이 쏠리지 못하게 만들고, 반드시 그 이치를 깨달아 착한 일을 분명하게 한 다음에야 마땅히 행할 길이 똑똑히 앞에 나타난다. 그래야 틀림없이 실력이 차차 발달하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길에 들어가는데는 이치를 깨닫는 것을 맨 먼저 해야 하고, 이치를 깨닫는데는 책을 읽는 것을 맨 먼저 해야 한다. 이것은 성인과 현인이 마음을 쓴 자취와 본받을만 하고 경계할만한 선과 악이 다 책에 있기 때문이다.
무릇 책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하게 팔짱을 끼고 조심스럽게 앉아서 공경히 책을 대하고, 마음을 기울이고 뜻을 다하여 세밀히 생각하고 충분히 읽고 깊이 뜻을 이해하면서 글귀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만약 입으로만 읽고서 마음으로는 체득하지 못하고 몸소 실행하지 아니하면 책은 책 대로고, 나는 나 대로 있을 것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으랴?무릇 책을 읽는데는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충분히 읽어서 그 뜻을 다 알아서 완전히 통달하고 의심이 없어진 다음에야 다른 책을 바꿔 읽을 것이요, 많은 것을 탐내고 얻는데만 힘써서 바쁘게 여러가지 책을 이것 저것 읽지 말도록 할 것이다”라고 했다.이 책은 이조의 유일한 교육적 교양서로서 많이 읽혀진 책인데 그 가치가 매우 컸다고 한다.
오늘에 있어서 사회의 변천, 발전에 따라 그 도덕적 윤리관의 기준도 많이 변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갈팡질팡 하고 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서양에 산다고 하면서 서양에 대해서 얼마나 배우고 알고 있는가? 그리스의 신화를 읽으면서 동양의 신화를 비교하였을 때 무엇을 발견하였나?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속한 토양을 떠나서는 내가 아닌 잡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속한 토양에 단단한 뿌리를 내렸으면 다른 토양에서 자란 것과 접목이 이루어져 새로운 하이브리드(Hybrid)가 우수하게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이 외국어를 정확하고 빠르게 배우게 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우리 말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외국어를 배울 때 얼마나 혼돈을 하게 되는가.
동양인이 아무리 영어를 잘 할줄 알아도 자기가 속한 토양의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가을이 찾아왔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조용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특히 젊은이들은 쉬고 갈 큰 나무들이 되기 위해 가슴에 독서의 씨를 심었으면 좋겠다. 또 연로하신 분들도 슬하의 자손들을 생각해 그동안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가을의 은은한 국화꽃 향기 속에 생의 마지막 노후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이 가을이 더할 수 없이 풍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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