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굶주림’ 하면 떠오르는 곳은 북한이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밥을 제대로 안 먹거나 음식을 버리면 “북한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라”는 말로 타이르곤 했다. 많은 한인 자녀들이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미국 가정에서는 ‘굶주림의 땅’ 하면 아프리카가 먼저 다가오는 모양이다. 한번은 백인 친구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음식을 남겨서 버리려고 하면 항상 부모님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난 그때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 -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는데 나는 왜 살이 쪄야할까…”
버려지는 음식 앞에서 부모 세대는 식량의 귀함을 보고, 풍요의 시대에 자란 아이는 그 음식이 몸에 들어가서 생기는 현상, 즉 비만을 먼저 보는 시각의 차이이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 보탠다면 음식을 만들고, 남은 음식을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그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을 보는 시각이다.
그 모두를 통틀어 볼 때 음식을 적게 만들어 남기지 않고 먹는 게 좋겠다는 캠페인이 지금 한국과 남가주에서 전개되고 있다. ‘빈 그릇 운동’이다.
‘빈 그릇’은 불교 사회운동 단체인 정토회가 시작한 ‘음식 남기지 않기 10만인 서약 캠페인’이다. 한국에서는 한달 여전 시작돼 환경부의 후원 하에 전개되고 있고, LA에서는 지난 5일부터 시작이 되었다.
‘빈 그릇’은 음식 적게 만들기와 남기지 말기의 두 과정으로 나뉜다. 음식을 적게 만들면 과식을 하지 않게 되니 건강에 좋고,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이웃을 돕는다면 나눔을 실천하는 기회도 얻게 된다.
아울러 일단 만든 음식은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어 쓰레기를 줄임으로써 환경오염 위기를 막자는 취지이다. 우리 각자가 지금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작은 실천이 ‘미래 세대와 푸른 지구별에 함께 사는 길’이라는 매혹적인 설명을 주최측은 달고 있다.
세상은 지금 ‘먹어서 죽는 사람’과 ‘못 먹어서 죽는 사람’으로 나뉜다. 북한이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 5살 미만 아동만 꼽아도 매일 3만명이 굶주려서 죽는다고 한다.
반면 전 세계 인구의 25%에 달하는 17억명은 비만이다. 국제 비만 태스크 포스는 비만이 ‘전 지구적 최대 질병’이라며 비만을 초래하는 식습관이 ‘21세기 인류의 적’이라고 경고했다. 너무 먹어 살이 찌면서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당뇨병 등 질병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사람들 - 먹어서 죽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먹음으로써 죽는 이유는 과식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의 식탐과 식탐을 부추기는 상업주의로 우리는 우리 몸에 무엇이 남을 지도 모르는 음식들을 많이도 먹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자연 속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자라는 소고기를 구경하기 힘들다. 대규모 사육장에서 제초제 뿌린 곡물 사료를 먹으며, 병 걸리지 않고 빨리 자라도록 항생제와 성장 촉진 호르몬을 맞고 자란 소고기를 먹는다.
그 소고기 1파운드를 얻는데 사료로 들어가는 곡식은 16파운드라고 한다. 제3세계에서는 곡식 낟알이 없어 사람이 죽어가고, 다른 쪽에서는 소, 돼지가 곡식사료를 펑펑 먹고, 그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또 비만으로 서서히 죽어 가는 것이 지구의 현실이다.
덜 먹고 쓰레기 안 만들기 운동은 건강과 환경 보호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나눔의 정신으로 볼 때 더욱 의미가 깊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정신이고, 불교의 가르침으로 보면 ‘인드라의 그물망’이다.
인도의 신 인드라는 그물 코마다 보석이 달린 그물을 가지고 있었는데, 각각의 보석들은 수많은 각을 가지고 있어서 한 보석 안에 다른 모든 보석들이 비치며 끝없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모든 존재는 하나도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연관이 되어있다는 상징이다.
자연·세상을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나의 ‘빈 그릇’이 지구 저편 어린이를 배부르게 하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푸른 지구별을 남겨주는 기적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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