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렬(건축가)
“시간으로 따지지 마십시오. 몇 대쯤 문제가 아닙니다. 10년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수목(樹木)처럼 성숙하십시오. 수목은 무리하게 수액(樹液)을 밀어내는 일이 없이 태연자약하게 봄에 몰아치는 폭풍에 휩쓸립니다.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그런 쓸데없는 근심에 머리를 쓰지 않습니다.
여름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여름은 흡사 영원(永遠)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듯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늠름하고 조용하게 기다리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에게만 옵니다. 즉, 인내가 전부입니다”릴케가 어느 문학 청년에게 쓴 충고어린 격려의 편지에 있는 구절이다.
참는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이다. 참는다는 것은 미덕이요, 삶이란 기다림이다. 사람을 기다리고, 때를 기다리고, 기회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참는 것이다. 참는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이요, 비우는 것이다.
조급병은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다. 급성장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서두르면 서두른 만큼 후회나 미련을 부른다.기다림의 여백 없이 생활의 여유는 존재할 수 없다. 지쳐서 그 자리에 돌이 될 지언정 기다
림의 미학을 믿고 인내하는 뚝심을 가져야 한다. 대기만성이라 하지 않는가.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한 한인 화백의 개인전 ‘집합’이 지난 9일부터 맨하탄 다운타운과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오프닝 리셉션에는 1,000여명의 게스트들이 다녀갔다.
뉴욕 뮤지엄과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물론이요, 레블롱의 론 펠만 회장 등 내노라하는 VIP들이 축하하기 위해 몰려들었다.그의 작품은 휘트니 뮤지엄과 영국 의류회사 버버리의 회장 등 유명인사들이 소장하고 있다. 나도 소장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갤러리 전시작 8점 중 4점이 오프닝 3일만에 이미 팔려나갔다. 그의 작품은 한 점에 2만7,000달러를 호가한다. 내가 이 화백의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왜? 그는 기다림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화제의 이 화백을 학창시절부터 지켜 보았다. 그는 지방의 한 사업가의 2대 독자로 태어났다. 집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대를 다니며 화가의 고달픈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필라델피아로 유학 와 먹고 살기 위해 “별 일을 다 해봤다”고 술회할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
13년의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나도 그 무렵 귀국했었다. 그와 나는 비록 전공은 달랐으나 소위 ‘해외파’로 십여년의 공백을 메꿔야 하는 동병상련을 공유했다.
고국에 돌아온 그는 줄 서기를 요구하는 한국 화단의 학연과 지연을 거부한 채 아웃사이더이자 무명인으로서 오랫동안 화단의 이단아로 소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붓을 꺾기 일보 직전 상황까지 갔었다. 오기가 도로 생겨 은둔한 채 작품에 매달렸다.
국내 화단의 분위기에 대한 분노는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에의 길로 자신을 채찍질 하게 된다. 50세가 넘어서야 이 화백은 작품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만의 독창적 화법을 한지에서 발견했다. 한약방을 하던 삼촌댁 천정에 빼곡히 매달려 있는 약재 봉지들... 그 시각적 충격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 화단을 공략한 것이다.
이후 한국 국립미술관에 의해 2001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고 시카고 아트 페어를 통해 세계에 알려진 그는 유명 화가가 되었다. 그는 자신 스스로를 ‘분노가 많은 사람’이라 한다. 그가 말하는 ‘분노’를 나는 잘 안다. 환쟁이가 된 아들과 인연을 끊은 아버지에게 성공한 화가로서 존재 증명을 해야 했으며 한국 화단에서 받은 박해에 대해 예술적 복수(?)를 하고 싶었다는 것을.
그는 어떤 면에서 최근 ‘빈 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아웃사이더 예술가로서 적수공권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연줄 없는 이단자, 김기덕,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인생은 어차피 힘든 것이지만 쓴 약을 먹을 때 삼켜버릴려고 하지 않고, 쓴 맛을 감미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생에는 단 맛이 전부가 아니다. 초콜렛, 커피, 올리브의 맛도 마찬가지다.
인내심을 갖고 인생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음미해 볼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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