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옥(고 앤디 김 어머니)
젖은 얼굴로 일어나 너의 방에 들러 작은 미소 띄우는 너와 마주앉는다.
출근하던 그 시간 깻잎 따느라 ‘잘 다녀오라’는 말도 하지 못한 그 아침, 영영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너를 보낸 날, 3년 전 오늘.
먼길 떠나 아직도 되돌아오지 않고 있는 너, 약속 한 마디 없이 떠난 너, 찬 서리가 내리네.부엌창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맑은 공기, 바람 눈부신 아침,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소박한 꿈, 작은 소망으로 살아온 엄마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 하나 뚫어 놓고...아침에 오버팩 공원의 기념비에 아빠, 엄마, 형 다녀왔단다.
꽃다발 갖다 놓으며 자꾸 만져서 까맣게 된 너의 이름 만져보고 쓰다듬고, 가끔씩 너의 출근길 따라가 버스에 오르는 듬직한 널 보며 엄마의 가슴은 파란 모정이 수채화 물감 퍼지듯 일렁였었는데...
‘앤디야’ 부르면 침묵으로 대답하는 너, 동네 어귀 큰 길 넘어 잔잔히 깔려가네.매일 아침 날 기다리는 산책길에 때때로 나타나는 궁뎅이에 흰 점이 크게 있는 귀엽기만한 어린 토끼가 인기척에 멀리 도망치는 뒤로 토끼야, 토끼야 부르면 너를 부르는 양 떨리는 젖은 목소리가 된단다.기다리다 보이는 날은 너를 본듯 토끼야, 토끼야 불러본단다.
그리움으로, 서러움으로.3,000여명의 고귀한 넋, 어찌 잠 재우랴. 테러를 규탄하나 인종, 종교, 국가간의 갈등, 대응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들..
세계 곳곳에서 테러 방지를 위해 첨단의 기계와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고 있지만 스페셜 리포트라는 말만 들어도 경악하게 만드는 이 시대.
우리나라 한국의 김선일군. 그렇게 ‘살려달라’ 애원했건만 그 젊은이의 소식은 몇일 동안 가슴을 아프게 했었지. TV에 나오는 얼굴에서 나의 얼굴 보며 동병상련의 쓰라림이 전해왔었지.
9.11 때의 건물이 비치는 뉴스가 TV에 나오면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며 하늘을 본다. 네가 가장 가까이 했던 베다니교회의 유스그룹, 널 제일 잊지못해 하시는 PAT 전도사님. 모두들 잘 있겠지.
그들에게 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오래 함께 했으면 해. 너의 분신이었던 기타를 만지면 네 향기 맡고, 너의 재력으로 자랑스럽게 장만했던 조그만 빨간 차 만져보며 연민의 사랑 전한다.
어제는 너의 직장이었던 사무실에 3일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너의 형과 세 식구가 방문을 했었지. 넓고 쾌적하고 깨끗한 사무실 입구 벽면에 여러 모양과 색깔로 그려진 27개의 촛불이 그려져 있고 그 옆으로 지금 여기 없는 이들의 이름들이 나란히 적혀 있었어.
너의 보스와 한참 얘기 나눈 후 형이 불쑥 네가 여기에서 지금까지 재직하였다면 어떤 종류의 사무실을 갖고 있을지 보여달라고 요청을 했지.참았던 봇물이 터지고 주체할 수 없이 흘러 흘러 강으로 흐르고 어찌 어찌 너를 잊으리.
이틀 전, 유가족들이 모여 아들을 잃은 이성재 목사님 교회에서 조그만 예배를 보았지. 슬픔의 어제를 뒤로 하고 보람의 내일을 위해 우리들 일어서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같은 고통, 같은 한숨에 젖은 우리들의 작은 모임은 서로 다둑거려주며 저녁시간을 보냈단다.당해봄이 없는 그 누구가 우리의 고통을 알까.
어느 날, 조그만 아이, 무엇을 잊고 갔었는지 통통 뛰며 뒤돌아 뛰어가는 귀여운 모습에서 어릴 적 네 생각을 하며 가슴 쓸어내리고 또 어느 날 아침 깨끗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젊은 청년에 네 모습 겹쳐 빨개진 눈으로 새벽길 걷는데 개의 이끌림으로 자주 만나뵈는 분으로 너를 몇 번 봤다는 그 분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앤디가 주저앉은 모습 보면 더 슬
퍼할테니 기쁘게 힘있게 살라’고 말씀하시더라.
네가 즐겨하던 테니스, 뉴저지 테니스 대회에 너의 이름으로 스칼라십이 전해졌고 알려짐 없이 주위에도 너의 희생이 좋은 열매 맺는 일에 듬뿍듬뿍 전해지고 싶어.이제 곧 잎들은 색깔을 바꾸고 강바람이 가슴을 파고들겠지. 너와의 간격을 좁히며 사는 동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 찾으며 살께.
당신이 있어서 내 인생이 더없이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가지고 싶다면 먼저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노력하라고 했지.좋은 말이지. 노력할께.마주치는 눈빛 사랑 전하며 네가 기뻐할 엄마로 살께.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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