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자유당 독재시절인 1958년 야당과 언론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이 개정되었다. 1956년 대선과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에 대한 민심의 이반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나자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야당과 언론의 숨통을 조이기 위한 것이었다.
개정안의 내용은 보안법의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헌법기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허위 사실을 적시 유포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하는 코걸이 귀걸이식 내용이었다. 야당과 언론은 맹렬히 반대했다. 자유당은 경호권을 발동하여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하던 야당의원들을 끌어내어 지하실에 감금하고 단독국회를 열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보안법 파동이며 12월 24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2.4 파동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또 국가보안법 파동이 일고 있다. 이번에는 보안법을 강화하려는 파동이 아니라 보안법을 폐지하려는 파동이다. 보안법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집권한 후 보안법 개폐론이 꾸준히 나오더니 대통령의 폐지 의사가 밝혀진 후 본격적으로 파동이 일고 있다. 이번에는 정부와 여당이 보안법을 폐지하려고 하고 야당이 보안법을 수호하려고 한다. 1958년의 상황과 정반대의 현상인 것이다.
보안법의 존폐에 관한 주장은 북한에 대한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북한이 한국에 대해 전혀 위협적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북한식 통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국가보안법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북한이 아직도 한국에 대한 위협적 존재이거나 북한에 의한 대남 적화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면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보안법의 폐지문제에 대해 행정부는 찬성 쪽이고 사법부는 반대쪽이고 국회에서는 여야가 대치 상태이다. 또 전직 정치사회의 원로 등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가 하면 일부 진보 그룹의 찬성여론으로 심각한 국론의 분열 현상을 빚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폐지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이 법이 역대 정권에 의해 국가를 보위하는 법이 아니라 정권을 보위하는 법으로 악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법은 정부가 수립된 후 1948년 12월에 처음 마련되어 자유당 정권과 5.16 군사정권, 5공 군사정권 시대에 계속 강화되면서 정권 안보를 위한 탄압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불고지, 무고날조 등은 확대해석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1988년 한국정부가 7.7 선언으로 남북 교류를 촉구한데 이어 1990년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정부의 승인 하에 한국국민의 북한 왕래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 인적, 물적 교류가 확대되었다. 북한에 대한 일체의 지원과 왕래, 회합, 통신을 금지하여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이
제는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법이 되고 말았다.
법이란 현실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사문화된 법을 그대로 둘 수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론이 힘을 받게 된 것이다.그러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까. 국보법이 현재 규정하고 있는 범죄 내용이 더 이상 범죄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 놓고 북한을 찬양하거나 북한을 위한 지원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으로 한국내에 북한 동조현상이 확산되고 있고 또 북한이 영향력 확대를 기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북한의 ‘이중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젊은이들이 앞 다투어 노동당에 가입하고 김정일을 찬양하고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게 되면 결국 남한은 망하고 말 것이다.그러므로 국보법의 폐해를 막고 또 시대에 맞지 않는 조항을 고칠 필요는 있지만 처벌내용을 완전 합법화하는 전면 폐지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국보법에 규정된 내용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정치적 자유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보다는 현실에 맞게 내용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보법이란 이름이 거부감을 준다면 얼마든지 다른 이름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유당이 정치 탄압을 목적으로 일으켰던 보안법 파동은 결국 자유당 독재정권의 종말을 재촉해 2년 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졌다. 지금 일고 있는 역 보안법 파동이 국민적 합의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강행된다면 그 결과는 정권의 붕괴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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