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일(우정공무원)
민족, 동포 및 겨레란 동의어로서 한 조상에서 태어난 후손들을 말한다. 얼마 전 플러싱에 위치한 치과에서 치아를 검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잔치집 간판이 보여 구경이라도 할 겸 들렸다. 입구에서부터 여러가지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팩에 담겨 있거나 쟁반에 쌓여있어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또 준비하고 판매하는 아주머니도 매우 위생적인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그러던 중 값싸고 맛있다고 친절하게 말을 건넨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팩에 담겨있는 김밥이다. 가격을 물으니 2달러라면서 타 업소보다 저렴하다고 했다. ‘이 김밥 한 롤인가요, 두 롤인가요?’ 물으니 ‘한 롤’이라 한다. 한국에서는 한 롤에 천원 하는데요... 재료값이 싼 이곳이 왜 비싸냐고 했더니 생산 원가라도 아는 듯 ‘인건비가 비싸서 그렇다’고 두 말 하지 못하도록 잘라 말한다.
그 옆에 붕어빵 만드는 기계가 보였다. 선진국 도시 뉴욕에서 붕어빵 기계가 웬일인가 싶었다. 연전에 플러싱 공용주차장 근방 모 제과점에서 호도과자 기계는 본 적이 있으나 60년대 구공탄이나 조개탄을 사용해 굽던 붕어빵 기계를 보니 40여년 전 통학할 때 친구들과 많이 먹기 내기를 했던 일들이 회상되어진다.
진열대 위에는 붕어빵 5개씩을 보기 좋게 팩에 넣어 랩으로 포장된 것이 3달러씩이라 한다. 밀가루빵 하나에 60센트가 된 셈이다.얼마전 본국에도 경기가 나빠지면서 붕어빵 장사가 도처에 생겨 빵기계 제작하는 곳에서는
주,야 작업을 해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불경기 와중에서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생산업자가 있다는 지상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아주머니, 금년 봄에 한국 갔을 때 이 붕어빵 같은 거 200원씩 주고 사 먹었는데요’ 했더니 판매하는 아주머니 대답에 또 한 번 놀랬다.
‘나 한국사람 아니예요’ 하면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중국사람입니다’ 한다. 반사적으로 얼굴 표정을 보니 정색하는 것이 아닌가.‘중국동포시군요’ 했더니 ‘연변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한인마켓에 갈 때마다 중국동포와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주위에서 말 소리를 들으면 어딘가 정겹고 도와주고 싶었던 이들, 한 핏줄 한 민족인데 고생이 되고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더라도 좌절 없이 각자 목표했던 꿈들이 모두 이뤄지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건만 오늘따라 다른 나라 사람을 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이 사람의 국적은 분명 중국이 틀림없다. 그러나 고용처가 한국가게이고 동족으로 알고 대화를 나누던 중 느닷없이 한방 얻어맞아 잠시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만약 뉴욕의 길거리에서 만난 한인(미국시민권자)을 한국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아니요, 미국사람이요’ 했다면 물어본 사람의 실망과 기분은 과연 어떠했을까?
언젠가 엘름허스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었다. ‘중국동포(조선족)는 언어와 인상착의는 한인과 같거나 비슷할 지라도 역시 중국인이야’ 한 적이 있다. 이 말이 은연 중에 나온 말인지, 서운한 일을 당했던 경험에서 나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뿐인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한인이민자의 피를 받은 후예들까지도 의젓하고 떳떳하게 한인 후손이란 말을 하고 한인들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다짐까지 한 것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플러싱 중국한의원 통역으로 있는 조선족 독고영재씨는 이민오기 전 요녕성 국영신문사에서 오래 근무한 지식인이다. 이 사람에게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정부의 동북공정 프로젝트 부당성을 지적했더니 확실한 한국역사라는 말 대신 우회적으로 정치적 해결 보다는 학술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답한다.
수백년 전부터 고구려사는 한국사인데 지금 와서 학술적으로 논의해야 된다고 하는 대답에는 역시 동족이라기 보다는 중국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며 팔은 안으로 굽지 않을 수 있다는 고사도 알게 해주는 것 같았다.
민족의 혈통과는 전혀 관계없는 수많은 대만대학 역사교수들까지 엄연한 한국사라고 하는데
같은 혈통을 이어받은 조선족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더 이상 중국정부의 앵무새가 되
지 말고 민족통일 후의 긴 안목으로 민족의 앞날을 보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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