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정(鄭)나라에 계함이라는 무당이 관상을 보고 생사·화복·수명을 귀신같이 알아 맞췄다. 계함에게 혹한 열자가 그의 스승 호자에게 와서, 그 무당이 자기 스승 보다 도(道)가 높은 것 같다고 하자, 호자가 그 무당을 데리고 와서 자기 관상을 보라고 했다. 계함이 호자의 관상을 보고 나와, ‘당신 스승은 열흘을 못 넘기고 죽는다’고 했다. 열자에게 이 말은 전해들은 호자는 ‘내가 땅의 기운을 보였기 때문이다’고 하고, 내일 다시 데려와 관상을 보라 했다. 다음 날, 관상을 보고 나온 계함은, ‘당신 스승은 나를 만나서 병이 나았소. 생기가 있어요’라고 했다. 호자는 ‘내가 하늘의 기운을 보였다’고 하며, 다음 날 다시 데려 오라 했다. 세 번째 관상을 본 계함은, ‘당신은 상이 일정하지 않아 상을 볼 수가 없습니다. 상이 일정해 지면 다시 봅시다’하고 물러갔다. 호자는 ‘나는 아까 차별없는 허무의 상을 보였다. 내일 다시 데려와 관상을 보게 하라.’ 다음 날, 계함은 호자를 보자 제대로 자리도 못 잡고 얼이 빠져 도망을 쳤다. 호자가 열자에게 말했다. ‘아까 나는 스스로 허심(虛心)하게 하였으므로, 계함은 내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 점도 치지 못하고 도망친 것이다.’ 열자는 비로소 자기가 아직 참된 학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윗 글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장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관상을 보고 점을 친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겉모습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귀신같이 용하다던 점장이 계함도 차별심을 없애니 관상을 볼 수 없었고, 마음을 허심하게 비우자 얼이 빠져 도망을 가버렸다.
우리는 흔히 욕심과 사심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비운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안다. 우리는 마음을 비웠다며, 오히려 그 비웠다는 교만과 아만으로 꽉 차서 냉소적으로 되거나, 말로만 마음을 비운 위선자가 되기 쉽다. 한국의 위정자들이 걸핏하면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해대지만, 공연한 정치적 수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 위선과 권력욕이 묻어나는 얼굴은 관상쟁이가 아니라도 알아보는 것이다. 참으로 마음을 비운 사람들이 어찌 나라꼴이 말이 아니어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도 권좌에 연연하랴!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가운데 유교는 경세(經世: 세상을 다스리는 일), 불교는 출세(出世: 세상에서 벗어남), 도교는 망세(忘世: 세상 일을 잊는 일)를 주로 말한다고 하여, 유교는 현실 참여적이고 불교와 도교는 현실 도피적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과 아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또 사욕에 따른 이해관계를 잊지 않은 채, 어찌 세상을 제대로 다스리겠는가?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벗어나고 잊어버리는 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속의 사욕과 사심을 버리고 바른 마음, 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달마는 『혈맥론(血脈論)』에서 마음은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 마음은 모든 성자(聖者)의 근원이며, 만가지 악의 근원이다고 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고 마음을 깨달으라 한다. 유교에서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자기 몸을 닦아야 한다(正心修身)고 한다.
동양사상의 가르침은 인간의 겉모습을 판단하는 관상이나 보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마음 수양을 통해 겉으로도 의연함이 배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뿐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일에 마음을 잃어버려 혹하기 쉬운 바쁜 현대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겉치레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공부다. 동양사상공부는 공자왈 맹자왈하며 한문이나 읽는 고리타분한 공부가 아니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 그것이 동양사상의 핵심적 가르침이다. 『맹자』의 다음 구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애처롭도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 모르는구나.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放心)을 찾는 것일 뿐이다(哀哉. 人有鷄犬放, 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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