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카페 씨엠’(Cafe’cm)에서 순정만화에 심취해있는 명랑 소녀 김나연양이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연신 책장을 넘기며 키득키득 웃고 있다.
재미 콸콸, 이해 쏙쏙…‘1달러 행복’
만화가 즐겁다
데이트족·잠시 맡긴 아이들 북적
연휴땐 외톨이들의 ‘외로움 해방구’
글과 그림 결합, 한글 배우기도 좋아
요즘 ‘반스 앤 노블’(Barns & Noble)과 같은 대형 서점에 가보면 두 번 놀란다. 우선 ‘만화’(Comics/Graphic Novels) 코너가 버젓이, 그것도 꽤나 넓게 자리잡고 있음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망가’(Manga·일본만화) 사이에 ‘한국만화’(Manhwa)가 꽂혀 있어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국적을 불문하고 동심은 만화로 통하나보다. 교과서 속에 몰래 만화책을 숨겨보던 스릴과 재미, 선생님이 옆에 와있는 줄도 모르고 만화에 열중해 있다가 혼쭐난 기억 등 ‘만화’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학창시절 만화에 얽힌 추억을 더듬으며 지금 만화를 읽는 이는 누구이고, 그 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만화방의 진풍경을 취재했다.
베벌리 센터내 서점 ‘브렌타노스’에는 영어 번역된 한국 만화와 일본 만화들이 별도의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저희 불량소녀 아니에요. 한국 비디오로 보는 거랑 한국 만화 읽는 게 뭐가 달라요? 그렇다고 매일 만화책에 빠져 사는 것도 아닌데… 우리 엄마는 만화 보면서 한글 실력 쌓으라고 하세요”
요즘 TV 드라마로 다시 인기를 찾은 순정 만화 ‘풀하우스’(원수연 글·그림)을 대여해 가는 10대 소녀들의 당찬 반론이다. 아직도 만화책을 들고 있으면 어른들은 불량소녀 운운한다며 투덜거린다.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이 미국과 프랑스 등 세계로 수출되는 유망 컨텐츠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아직도 기성세대가 지닌 만화에 대한 선입견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면 만화는 땡땡이 학생들이나 보는 책일까.
올해 UC어바인에 합격한 최진영양은 SAT II 한국어 점수가 800점 만점에 790점이다. UCLA에 입학한 친구 줄리 이양도 마찬가지로, 특히 이양은 미국에서 태어난 2세인데 한국어를 유창하게 읽고 쓰고 말한다.
엄마랑 한국 비디오를 보면서 한글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또래친구들과 어울려 한국 만화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읽고 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비디오는 말을 이해하는 것일 뿐이지만, 만화는 그림과 문자가 결합돼 있어 그만큼 더 친숙해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인식시킬 수 있어 한글학교에 가는 것보다 좋아요”
이들이 만화광이라서 내세우는 지론은 절대 아니다. 만화도 독서의 일부분이라는 것.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에 만화를 보면 무한한 상상력이 활개를 친다. 더불어 한글 깨우치기에 도움이 된다면 만화보기도 권장할만하지 않은가.
만화방에서 만난 중년 남성 제이슨 오씨의 에피소드.
아주 옛날 성인만화로 분류되는 고우영의 ‘수호지’를 몰래 들고 다니며 읽었을 정도로 만화를 좋아했다는 그는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듯이 나이가 들면서 한동안 만화를 잊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만화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난 건 자녀가 읽던 만화책을 슬그머니 훔쳐 읽으면서부터.
“한번은 중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친구들과 함께 이현세의 ‘블루 앤젤’을 읽고 있는 거예요…”
순간 비오는 날 친구와 나란히 앉아 만화책을 앞에 수북히 쌓아두고 컵라면 끓여먹던 시절이 불현듯 떠올라 아들 곁에 앉아 함께 만화책을 뒤적였다고 한다.
물론 영어 번역본이라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 시절 그 때의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가 행복감을 만끽했다고 한다.
“원래 만화를 좋아했죠. 비록 지금은 만화가의 꿈을 접었지만 한때는 만화를 그리면서 모든 것을 그곳에 쏟아 부었던 정열의 시기도 있었어요. 비록 남의 것을 베끼는 수준의 습작이긴 해도 만화는 제게 책상서랍 속에 남아있는 추억입니다”
만화도, 컴퓨터도 뭐든지 중독현상을 보이면 가장 중요한 학업을 소홀히 하게돼 부모의 입장에선 걱정이 앞선다. 교육적인 만화보다는 선정·폭력적인 만화에 심취한다면 뭘 보고 배울지 끔직하다. 성적 노출이나 과도한 폭력, 낯뜨거운 묘사가 많은 불량(?)만화로 인해 건전하고 유익한 만화의 미래가 흔들리긴 하지만, 그래도 만화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꼭 필요한 또래문화다.
어깨동무, 여고생 등 어린이·청소년 잡지에 실린 연재만화와 캔디, 유리가면, 베르사유의 장미,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일본만화에 심취했던 30·40대라면 만화라고 무조건 금지할 것이 아니라, 같이 보면서 그 시간을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아이의 흥미와 개성을 찾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겠다.
<글 하은선 기자·사진 서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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