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진하게 만들어 주세요”
평소 입에 대지도 않던 커피를 달라며 들어서는 K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들을 대학으로 떠나 보내고 허탈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달려 온 것이다. 함께 가겠다는 엄마를 한사코 뿌리치고 아빠와 떠난 아들이 괘씸하다. 입버릇처럼 “대학은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정하겠어요” 하던 아들의 변심이 밉다.
7, 8월은 대학으로 떠나는 학생들에게 황금 같은 여름이다. 마음놓고 놀 수 있는 때가 이 시절이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는 홀가분함은 그들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다. 미지의 세계로 내딛는 발돋음이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자유를 향유 할 수 있어 좋고 새로운 도전에 설렌다.
남은 자는 마음이 허전하다. 누군가 빼앗아 가버린 텅 빈 가슴에 갈대가 서걱거린다. 목마름 같은 갈급함과 가슴저린 그리움이 일렁인다. 더 사랑해 주고 관심 가져주지 못한 것들이 후회된다. 자녀들이 집을 떠나면서부터 부모 곁을 아주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졸업 후 그곳에서 직업을 갖고 배우자를 만나고, 부모가 보살펴야 하는 시기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K 부인은 유학생으로 이곳에 온 분이다. 전문직을 가졌었으나 결혼이후 외아들을 위하여 전업주부로 살았다. 폭넓은 전인교육에 치중하려 애쓴 보람이 있어 아들은 잘 자라 주었다.
그런 아들이 커가면서 엄마와 대립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들의 외모가 더할 수 없이 대견스러우나 그에 따른 의사 존중과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함을 고려하지 않았다. 매사를 명령하고 간섭하고 규제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들의 장래를 위한 엄마의 정성으로 생각했다. 사랑은 간섭이 아니라 편한 마음을 갖도록 배려하는 것임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엄마의 규격품이 아니에요” 하는 아들의 절규를 들었을 때 비로소 번쩍 정신이 들었다.
프로스트는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 되었을 때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고 이미 우리가 걸어온 과거 속에 씨앗이 뿌려 졌던 것”이라고 했다. 아들은 오래 전부터 집을 떠나야 엄마의 지나친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녀들이 자라주기 바란다. 마찬가지로 자녀들도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만큼의 삶을 살고 싶어한다. 자녀를 바라보는 눈이 관대하고 현명해져야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다. 일방적 강요는 마음을 닫게 만든다.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의 인격체로 잘 키워서 사회로 진출할 때까지 보호막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어느 모임에서 들은 한 청년의 말이 인상에 남는다. 그의 부모님은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몇 가지 규칙이 있었으나 비교적 자유롭게 공부하게했다. 모든 일을 본인이 스스로 알아서 하게 맡겼다. 대학 진학 때도 학교와 학과를 본인이 선택하게 했고 직장도 배우자도 모두 스스로 결정했다. 부모는 자녀가 조언을 구할 때 최선을 다하여 함께 의논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전적인 부모님의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에 매사를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했으며 책임감이 있었다고 한다. 학부 4년 동안 매주 보내 주신 편지가 격려와 힘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대 기업의 중견간부가 된 것은 부모님의 믿음에 부응하는 자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자녀 교육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없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 농사라고 하지 않던가. 떠나고 난 다음에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우울해 질 것이 아니라 함께 지낼 때 사랑과 이해와 관용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한다. 자녀들이 한 계단씩 뛰어 넘어 성장할 때마다 교량 역할을 해주는 임무가 바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유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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