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입구에서 장인어른과 온가족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잃어버린 하루’만회위해 강행군 사흘
러시아 장인 합류 늦어, 밤11시까지 운전
결혼 10주년… 가족의 진리 새삼 되새겨
길 떠난지 어느덧 5일째. 오늘은 텍사스에서 오클라호마까지 370마일 이동하는 날이다. 지난 4일 동안 1,300마일 정도의 거리를 혼자서 운전하고 왔는데 오늘은 고맙게도 아내가 아침부터 자기가 운전대를 잡겠다며 나는 트레일러로 가서 조용히 글이나 마무리 지으라고 배려해준다. 행여나 마음이 변할까 조심해 운전하라고 한마디하고는 곧바로 트레일러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5일만에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된 셈이다.
가족의 의미를 찾고, 미국에 사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며, 나를 향한 삶의 의미를 재점검하기에 이번 첫 주간은 정신없이 분주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우선 여행 출발 날짜가 갑자기 하루 연기되는 바람에 시작부터 잃어버린 하루를 따라잡기 위해 첫 3일은 계속 밤11시까지 운전하며 목적지에 도착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이 물가에서 놀고 있다.
광활한 아름다움을 가진 그랜드 캐년.
텍사스 아마리요에 있는 캐딜락 랜치.
출발 날짜가 지연된 것은 러시아에서 출발해서 우리와 동행하기로 한 장인 어른의 비행기가 모스크바에서 이틀이 늦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니콜라이 장인은 구 소련시절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유럽 올림픽에 참가해 은메달까지 땄던 운동선수 출신이시다. 한창 때 수영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몸매가 이제 60 가까운 나이가 됐는데도 아직까지 웃통을 벗으면 역삼각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장인어른 근처에서는 절대로 웃통을 벗어 젖히는 그런 몰상식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으레 운동 선수 출신들이 그렇듯이 장인어른도 매사에 낙천적이고 막힘이 없으신 분이다. 예은, 예찬이와는 7년 만에, 그리고 이제 막2살이 된 예진이와는 첫 번째 상면이지만 며칠 여행을 함께 하면서 서투른 영어와 러시아말을 서로 가르치면서 벌써 외할아버지와 손주들은 한통속이 되었다. 그래 피는 못 속인다더니….
아내 올가와는 12년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나 올해로 결혼 10주년이 됐다. 당시 나는 평신도 선교사로 모스크바 은혜 선교센터에서 다른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을 주로 하고 있었는데, 막말로 하라는 선교는 안하고 연애만 하다가 아내와 결혼까지 하게 됐다.
그 당시 함께 있던 선교사님들 중에 우리의 결혼에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나 또한 “과연 내가 잘 살수 있을까...”하는 회의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문화와 피부색깔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피부색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그리고 나이 차이도 한참 되는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게됐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결혼을 결정할 수 있었던 ‘그 무엇’은 바로 ‘사랑과 믿음’이었다.
결혼 후 하나님께서는 이쁜 딸 예은이를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다음 해에 연년생으로 아들 예찬이를 모스크바 병원에서 힘들게 낳고 우리 가족은 5년만에 LA 집으로 귀환했다. 갈 때는 싱글로 들어갔었는데 올 때는 아내와 아이 둘까지 합해서 모두 4명이 돼서 돌아왔으니, 대단한 성공이라고 나는 늘 자부(?)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여인과 결혼을 당초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던 어머니도 토끼 같은 손주들을 보시면서 마음이 눈덩이처럼 녹고, 얼굴에 함박꽃이 지금까지도 환하게 피어있다.
막내 예진이는 나이 40이 되면서 본 늦둥이다. 어느 날 마음 가운데 아이가 하나 정도 더 있어도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달에 예진이가 들어섰고 한국 축구팀이 월드컵 축구 4강 진출의 신화를 만들던 날 새벽 5시25분에 태어났다. 예진이는 우리 가족에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예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는 새삼스럽게 가족의 의미와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는 30, 40대의 나이 그룹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독특한 면이 많은 세대다. 그래서 ‘386세대’니, ‘낀세대’니 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찾았고, 윗 세대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부패한 정부 권력에 저항하면서 개인주의적인 의미의 ‘좋은 가족’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는 첫 번째 젊은 세대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평생 직장, 평생 가족의 개념이 무너지는 독한 몸살을 앓은 첫 기성세대이다. 그 몸살의 여파는 오늘도 내 주변 친구들, 교회 성도들 가운데 전쟁터의 파편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이처럼 조롱을 당했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바람을 피우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사는 것이고, 가족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마음에 원하는 것들을 하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것이라고 속이는 세상. 과연 오늘날 가족이 설자리는 어디인가?
그랜드 캐년 협곡에서 오래된 고목 나무를 보면서 “한번 자리 잡은 나무는 절대로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는 자연의 진리를 새삼스럽게 되새겨 본다.
■여행저널
▲첫째날(7월15일,목)
테하차피-애리조나, 그랜드 캐년 입구 월리암스/총 435마일
테하차피에서 오후 2시 출발. 58번 East 프리웨이를 타고 90마일을 달려 바스토우에 도착, 40번 East 프리웨이로 갈아탄다. 두시간 정도를 더 달리니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주를 나누는 아름다운 콜로라도강이 나왔다.
애리조나주로 들어선 시간이 오후 7시, 창 밖의 온도는 아직 화씨 106도. 완전한 찜통 더위다. 잠시 트레일러에서 놀던 아이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가지고 다시 차안으로 돌아왔다.
여행용 트레일러의 에어컨은 정차했을 때만 쓸 수 있어 이런 날씨에는 그야말로 ‘달리는 사우나’가 된다. 윌리암스 KOA 야영장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였다. 중간에 잠시 쉬고 또한 그랜드 캐년까지 길이 오르막 길(해발고도 7,200피트)이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둘째날(7월16일, 금) - 윌리엄스-뉴 멕시코, 앨버커키/총 360마일
아침에 서둘러 그랜드 캐년을 구경하고 뉴멕시코로 출발하는 바쁜 일정. 원래 그랜드 캐년에서 이틀을 계획했었는데 출발이 하루 지연되면서 일정을 하루로 줄였다. 야영장에서 캐년까지는 55마일 거리. 부지런히 그랜드 캐년을 구경하고 다시 40번 East 프리웨이로 들어섰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이건 비가 내리는 정도가 아니고 폭포수를 통과하는 것 같다. 트레일러를 달고는 초보운전이기에 겁도 나고 해서 비상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차를 프리웨이 옆에 정차시켰다. 그런데 잠시 뒤에 보니까 뒤에 오던 차들이 덩달아 모두 차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그래 이런 날씨에는 안전 운행이 가장 중요하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또 밤11시. 현지시간으로는 밤12시에 도착한 셈이다. 차를 세우고 나니까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짜릿한 피로감이 엄습해 왔다.
▲셋째날(7월17일, 토) - 앨버커키-텍사스 아마리요/288 마일
앨버커키는 뉴멕시코 지역 일대에 있던 인디안 종족의 이름. 인구 40만 정도의 조그만 도시인데 의외로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많이 있다. 텍사스로 출발하기 전 오전 시간을 다운타운에서 보내기로 하고, 원자력 박물관, 래틀 스네이크(방울뱀) 박물관, 그리고 역사, 과학박물관(History and Science Museum) 등 3곳을 돌아 봤다.
그럭저럭 오후 3시나 돼서 다시 40번 East로 방향을 틀었다. 오늘도 달려야 될 거리가 거의 300마일 정도 되니 부지런히 달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텍사스 접경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하늘이 검정색으로 변하더니 얼음 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앗! 우박이다.
어제 그랜드 캐년을 떠날 때와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프리웨이 옆에 비상주차시키고 우박이 차 유리창을 깨지 않길 기도하면서 기다린다. 또 열심히 달려 텍사스 야영장에 도착해 보니 또 밤 11시다. 밤은 늦었지만 그래도 신라면과 동치미 김치로 속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넷째, 다섯째날(7월18, 19일)-텍사스-오클라호마/390 마일.
텍사스에서는 이틀을 지내기로 했다. 텍사스로 들어서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갤런당 2달러를 상회했던 개솔린 가격이 갑자기 1달러 80센트 선으로 떨어진 것. 캘리포니아를 출발할 때 2달러20센트씩 했던 것 같은데, 텍사스에 오니 가격이 40센트 정도 떨어진 셈이다. 텍사스에 석유 재발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가? 앞으로 갈 길이 먼데, 개스 가격이 계속 이 정도만 유지해 주면 좋겠다. 주일 예배를 드린 후, 오후에는 좀 여유를 가지고 시내 관광과 팔로 두로 캐년(Palo Duro Canyon) 주립 공원을 둘려봤다.
아마리요에서 가장 특색 있는 볼거리중 하나는 캐딜락 랜치였다. 61번 Exit에서 내려 남쪽방향으로 잠깐 가다보면 웬 자동차들이 땅에 묻혀 있는 장소를 보게되는데 이곳이 바로 캐딜락 랜치다. 이곳에는 1949년형 캐딜락부터 시작해서 1964년형까지 모두 10대의 캐딜락이 코를 땅에 박고 세워져있다. 조금 자세히 보면 캐딜락은 매번 모델이 바뀔 때마다 주로 꼬리모양이 변형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참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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